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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한번 북녘 땅 달리고 싶어”81세 마라토너 장재연씨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8.06.08 22:33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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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십대 초 겪은 전쟁 참상 “생생”
마라톤 풀코스 560회 넘게 완주

 

81세의 나이에 지금도 마라톤 풀코스를 거의 매 주 달린다는 장재연씨. 두 발로 북녘땅을 달려보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다.


[고양신문] “65세에 처음 마라톤을 시작해 지금까지 42.195km 풀코스를 정확히 564회 완주했습니다. 대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해외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로 건너편에 뻔히 건너다보이는 북녘 땅을 한 번도 달려보지 못했다는 게 새삼 서럽게 느껴지더군요.”

올해로 81세를 맞은 장재연씨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기고문을 신문사에 보낸 이유를 ‘죽기 전에 꼭 한번 북한땅을 달려보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고양신문 메일로 장씨의 기고문이 도착한 것은 지난달 말. 고양의 토박이 집안 출신으로 지금은 서울 양천구에서 지내고 있다고 밝힌 장씨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어릴 적 겪은 한국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A4 1장 분량의 서사시를 보내왔다.

글쓴이가 궁금해 만남을 청했더니 장재연씨가 직접 고양신문사를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양왕릉 근처 다락골에 살며 원당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때 전쟁이 터졌어요. 가족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가 포성을 들었지요. 38선에서 가까워 한나절만에 고양땅으로 인민군이 들이닥쳤어요.”

인민군 치하에서 아버지가 실종된 장씨 가족은 1.4후퇴 때 피난길에 나서 꽁꽁 언 행주나루 앞 한강을 건너야 했다. 구름떼처럼 몰려든 피난행렬이 줄지어 한강을 건너는데, 장씨 가족 코앞에서 한 대가족의 살림살이를 질마에 가득 실은 황소 한 마리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갈라진 얼음장 속으로 그대로 가라앉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소와 함께 전 재산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속절 없이 바라보며 울부짖는 가족들의 모습이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아요. 피난길 중간에 피아를 구분 않는 폭격을 피해 길섶으로 수없이 몸을 숨기기도 했구요. 생과 사가 한끗차이로 갈리는 비참한 세월이었죠.”

장씨는 본인 세대의 친구들이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가정을 꾸리고, 사회와 나라를 다시 재건한 세월이 꿈만 같다고 말한다. 장씨 역시 고양땅에서 마흔 살까지 지내다 서울로 이사한 후 장사 등을 하며 부지런히 살았다. 노년이 돼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자 장씨는 악기, 등산, 서예 등 다양한 취미를 열심히 익혔다.

그 중에서도 마라톤은 장씨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준 단짝 취미가 됐다. 지금도 마라톤 풀코스를 가뿐하게 완주하는 장재연씨는 지난해 서울의료원이 주최한 ‘건강어르신 선발대회’에서 100여 명의 참가자 중 당당히 1등을 하며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실 제가 약골소리를 들었는데, 마라톤을 시작하고 나서 천식도 고치고 젊은 시절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게 됐어요. 마라톤은 아주 정직한 운동입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꾸준히 노력하면 몸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이만한 만병통치약이 없습니다.”

장씨는 건강한 신체 못잖게 마음의 건강도 열심히 챙긴다. 그의 마음건강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며 즐거운 웃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잡히면 장씨는 원당 주교동 먹자골목으로 부지런히 달려온다.

“내가 원당초등학교 16회인데, 전쟁 때문에 졸업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래도 그때 함께 학교에 다니던 어릴 적 친구들을 지금도 일 년에 몇 차례씩 꼭 만납니다. 어느새 먼 길을 떠난 친구들도 많지만, 언제 만나도 허물없이 추억과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벗들이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합니다.”

만남을 마무리하며 장씨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며 뜨거운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처럼 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남과 북이 함께 왕래하는 시절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휴전선이 열리는 날 두 발로 임진강 너머 북녘 땅으로 달려가 나무도 만져보고, 흙냄새도 맡아보고 싶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몸의 건강을, 옛 친구들을 만나며 마음의 기쁨을 유지한다는 장재연씨.
장재연씨는 원당동 다락골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인동 장씨 황상파 종중 후손이다. 왕릉골 입구에는 문중의 자랑스런 유산인 '장의중 효자 정려각'이 남아있다. 장씨가 고종임금이 하사한 정려 효자문을 가리키고 있다.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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