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상만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모 대학 법대에서 ‘사회와 인권’ 외래교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때가 지난 3월의 일이었습니다. 제 능력에 과분한 일이 아닐까 싶어 처음엔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20대 청년들과 공부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읽을 기회라 생각하니 욕심이 났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한 학기 강의가 6월 초에 끝났습니다.

72명의 학생들과 만난 첫 강의 때 강단에서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도 모르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였습니다. “교수인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하며 혼란스럽게 하지 않겠다”는 부연 설명에 학생들의 눈빛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인터넷 검색만 하면 알만한 소리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즉 알량한 지식이 아닌 인권 현장에서 제가 직접 보고 경험했으며 확인한 사실만 들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뭘 쓰거나 외우는 수업은 없다”였습니다. 암기가 아닌 공감으로 수업을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매주 3시간씩, 총 15주 동안 이뤄진 강의에는 세 명의 외부 강사도 초청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생생한 인권 현장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영화 ‘재심’으로 유명한 실제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를 모셔 억울한 사람들의 사례를 전해 줬습니다. 또한 여러 종편 방송을 통해 북한 인권 이야기가 두서없이 알려져 있는데 무엇이 진실이고 가짜인지 알려주고 싶어 40년 넘게 북한에서 살다 탈북한 홍강철씨도 강의에 초청했습니다. 평소 북한의 인권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해’ 인터넷에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손님은 세월호 참사로 딸 유민양을 잃은 유민아빠, 김영오 선생이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무려 46일간 단식을 했던 그 분의 강연은 정말이지 많은 학생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학생들은 강연 종료 후 노란색 세월호 밴드를 직접 준비해 나눠주는 그 분을 안아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학생들과 어우러진 공부 중에 제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중간고사 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색다른 시도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어떻고 인권의 역사가 어떠니 하는 뻔한 문제 대신 ‘답이 없는 시험을’ 보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낸 문제가 이것이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 30개 조항을 읽고 그중 마음에 드는 조항 하나를 선택한 후, 왜 이를 선택하였는지 자기 경험을 예로 들어 논하시오.’

저는 12년의 초중고 과정을 공부하면서도 인권과 관련한 선언문 하나 읽을 기회가 없던 학생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연 학생들이 제대로 된 답을 돌려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읽으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미래세대의 주역인 우리 청년들이 알바를 하며 느낀 부조리한 노동 현실의 고발, 그리고 여성으로서 느끼는 성차별과 안전 문제, 그리고 종갓집의 자녀로, 또 누군가는 보육원에서 성장하면서 겪어온 내면의 비밀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학생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읽어보지 못한, 아니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인권선언문을 시험 덕분에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학생의 글을 읽으며 저는 빙그레 웃음이 났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혹시 이 글을 접하신 분들 중 아직 세계인권선언문을 못 읽은 분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꼭 한번 찾아서 읽어보세요. 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세계 인류의 인권 옹호를 위해 1948년 12월 10일 유엔이 선포한 모두 30개 조항의 이 선언문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진 권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줄 겁니다. 죽기 전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인권은 소중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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