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 기념강좌 연 인문학모임 '귀가쫑긋'

회원들 자발적으로 강연ㆍ모임 꾸려 
8년을 함께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디딤돌
회원들이 말하는 "귀가쫑긋의 매력은?"

 

 

[고양신문] 고양에서는 ‘인문학’이라는 단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름이 하나 있다. 고양을 대표하는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이다. 8년 전 몇몇 지인들이 모여 시작한 모임이 지금은 70여 명 정회원이 활동하는 학습 공동체로 성장했다. 귀가쫑긋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월례강좌는 매달 첫 번째 금요일마다 어김없이 열려 이달 초 100회 기념강연을 열었다.

5회 연속강연으로 기획된 기념행사의 마지막 날, 회원들의 마음에는 너나 없이 뿌듯한 자부심이 넘쳤다. 100회 기념행사를 기획하며 근사한 공간을 빌려 특급 강사를 모시자는 의견도 있었고, 가장 호응이 뜨거웠던 강사들을 다시 초대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었다. 하지만 결론은 ‘우리들 스스로의 축제를 만들자’였다. 100회를 이끌어 온 가장 큰 원동력은 항상 들을 귀를 열어놓고 있는 회원들이라는 생각에서다.

다섯 번 이어진 100회 기념강연의 강사들은 외부에서 초청하지 않고, 서양고전과 동양고전, 생명과 건강, 글쓰기 등을 공부하는 소모임 선생님들을 모셨다. 그럼에도 매회 60~80명의 청중들이 참가해 배움의 축제를 함께 즐겼다.

귀가쫑긋이 주목받는 이유는 문화의 헤게모니가 서울로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서울에서도 찾기 힘든 규모와 수준의 인문학 모임을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명도 높은 지식인을 간판 삼아 결집한 여타의 인문학 공부모임과 달리 귀가쫑긋은 문화적 권력이 특정인에게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빛난다. 물론 인문학자와 교수, 전문직 종사자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지만, 누구도 모임 안에서 특별한 지분을 주장하지 않는다.

귀가쫑긋 정기강좌 100회를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모임의 진짜 주인공인 평범한 회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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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즐거움 누리는 행복”

박현서(60대 중반)씨는 지난해 4월부터 모임에 참석했다. 평소 불교미술과 불교서적을 즐겨읽던 그는 귀가쫑긋에서 동양고전, 생명과 과학 등 다양한 공부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관심분야가 큰틀 안에서 서로 이어지고, 앎이 통합되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오랫동안 교육계에 있었지만, 배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늦은 나이에 새삼 실감하고 있다”고도 했다.
동일한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나누다 보면, 혼자였다면 근접하지 못했을 새로운 시야가 열리곤 한다. 그는 이를 두고 “숲과 나무를 함께 보는 쾌감”이라고 말했다. “지식과 우정을 평등하게 나누는 문화가 귀가쫑긋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시민들의 평등한 공동체”

50대 중반의 은행 지점장 이규상씨는 정기강좌는 물론 서양철학반에서 신화를, 동양철학반에서는 주역을 공부하고 있고, 생명과 건강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있다. 몸공부반과 함께 산에 오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는 “머리로 하는 공부와 몸으로 하는 공부를 골고루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귀가쫑긋이 지적 권위를 갖는 지도자와 제자의 관계로 짜여지지 않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회원들 간의 수평적 관계가 유지되면서도 공부와 토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점도 귀가쫑긋 회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다.
“형식에서의 자발성이 전제되면 참여의 기쁨이 배가됩니다. 귀가쫑긋은 스스로 참여해 공부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학습과 친교가 동시에 가능합니다. 자유롭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만든 평등한 공동체라고나 할까요.”
귀가쫑긋이 이렇듯 성숙한 모습을 갖추기까지에는 모임의 살림을 챙기는 운영진들의 겸손한 헌신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 이규상씨의 생각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아름다운 공존”

40대 후반의 직장인 노진호씨는 경쟁적 직장생활과 소모적 관계에 지쳐갈 즈음, 귀가쫑긋의 문을 스스로 두드렸다. 이곳에서 서양철학 공부와 책읽기 모임에 참여하며 마음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는 귀가쫑긋의 가장 큰 장점으로 ‘다름의 공존’을 꼽았다. 누군가는 공부하는 일에,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누군가는 강연을 듣는 일에 관심이 많겠지만, 이러한 다양한 욕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충족되는 공간이 귀가쫑긋이라는 설명이다.
“나와 다른 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참 힘든데, 귀가쫑긋에서는 그게 가능합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그게 더 큰 공부인지도 모릅니다.”   

“지역과 이웃을 향한 관심의 시발점”

초기부터 참여한 박종호씨는 귀가쫑긋의 8년 역사를 지켜 본 감회가 남다르다. 처음에는 모임이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정기강좌가 30회를 넘기자, 귀가쫑긋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그때부터 부랴부랴 지나간 강좌에 대한 기록을 뒤늦게 정리했다고 추억했다.
“처음에는 그저 다음달 강사를 섭외하는데 급급했는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100회를 넘기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150회, 200회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야겠다는 목표도 생기구요.”
그는 정회원들이 낸 회비를 재원으로 삼아 매회 적잖은 예산이 소요되는 강좌를 이어가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양질의 인문학 강좌를 이웃들에게 무료로 열어놓음으로써 지역사회에 참여의 자극제를 던져주려는 것입니다. 귀가쫑긋의 작은 시도가 동심원처럼 퍼져 나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통과 참여의 움직임이 촉발되고 있다고 자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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