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제7기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집권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지난 1995년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유례없는 결과라는 평가다. 17곳의 광역단체장 중 집권당은 서울시장을 비롯해 14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함으로써 지방권력까지 손에 넣은 반면, 야당은 단 2곳에서만 당선자를 내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또 집권당은 기초자치단체장 226명 중 151명, 광역의원 824명 중 647명, 기초의원 2541명 중 1386명을 배출했고,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전체 12곳의 지역구 중 후보를 내지 않은 1곳을 제외한 11곳에서 모두 당선됐다.

고양시 결과도 예외는 아니다. 집권당은 기초자치단체장인 고양시장을 비롯해 비례대표 4명을 포함해 시의원 33명 중 21명이, 경기도의원은 비례대표 1명을 포함해 11명 전원이 당선됐다. 반면, 보수 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8명에 그쳤다. 진보 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4명을 당선시켜 크게 약진했다는 평가다.

일단 승리를 거둔 집권당에는 축하를 보내며,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을 성실히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 패배한 보수 야당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겠지만, 이번만큼은 냉철한 반성과 성찰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게 가능할지 미지수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선택에 고민이 깊었다. 아니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해야만 했다. 지난 선거들에서는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면, 이번에는 평소 가지고 있던 정치적 성향을 투표에 반영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게 분명해 보인다. 최종 투표율에는 큰 편화가 없음에도 한쪽으로 표가 쏠린 개표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정부패와 무능에 대한 심판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가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야당에서는 경기불황 실업률 상승 등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맞대응했지만 애초부터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우리에게 남긴 시사점은 무엇일까.

먼저, 우리 유권자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헌신적 국민의식을 들 수 있다. 최근 극심한 경기불황과 높은 실업률로 인한 당장의 경제적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한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미래를 선택했고, 더 나아가 민생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주장은 외면했다. 1990년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빌 클린턴 후보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로 당선된 것에 비춰보면, 유권자의 선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승리는 유권자의 몫이라고 보는 게 맞다.

또,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세력에는 회초리를 들었다. 대부분의 국민이 아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단 말인가. 정치는 견제와 협상의 산물이기에 어느 한쪽에 쏠리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금의 야당으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국민이 내린 냉정한 결론이다. 국민을 위한 봉사에 앞서 자신들의 권익만 추구하는 집단에 내린 준엄한 심판이다.

결코 작지 않은 또 하나의 성과로, 지역감정 해소 또는 완화를 들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들과 소위 3김 시대를 거쳐 3당 합당으로 이어지며 뿌리 내린 지역감정이 이번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모든 정당과 후보는 정책 경쟁을 통해 인물의 자질과 능력을 겨루고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저주가 풀려 지역 간 대립이 영원히 자취를 감추기를 기대해본다.

하지만, 압도적인 선거결과에 오히려 걱정도 앞선다. 이번 결과는 집권당이 잘 한 결과라기보다는 상대의 무능과 지리멸렬에서 비롯된 반사이익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과 성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만과 독선에 빠진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견제와 타협의 균형추가 기울어진 대의정치가 걱정되는 이유다. 지금 상대가 맞은 화살이 자신들에게 되돌아 올 수도 있음을 직시할 일이다.

더욱 우려되는 건, 이번 선거에서도 중앙정치에 의한 지방정치의 예속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편의상 전국동시선거로 치르는 것일 뿐 지방선거는 엄연히 지방의 일꾼을 뽑는 지역의 축제다. 임기 동안 지역사회를 이끌 적임자를 찾는 중요한 절차다. 중앙 정치무대에 대한 민심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언정 지방선거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어서는 곤란하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과정이 중앙정치의 지나친 작용과 개입으로 왜곡된다면 그건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고, 결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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