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역사에 바치는 '기억과 위로'의 무대

평범한 시민배우들, 무대 열정 불살라
기획부터 공연까지 시민 손으로 완성

 

1980년 광주에서의 비극을 다룬 연극 '그날'을 완성한 극단 아벡.


[고양신문] 1980년 그날, 광주에서 벌어졌던 그날의 그일,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시민연극 ‘그날’이 지난 6월 23일과 24일 양일간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무대에 올랐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가해진 폭압 앞에서 시민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분노, 억울함, 그리고 광주와 이웃을 지키기 위해 단결했던 이들의 모습이 무대에서 펼쳐졌다. 몰입도 있는 구성과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관객들은 마치 그날 광주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가족을 총탄에 잃고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의 일을 증언한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참… 잘한 거 같소.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라요”하는 장면에서는 끌어안고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연극이 끝난 후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이들이 시민배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 로비 가득 기념촬영을 하며 “너무 멋졌다”를 연발했다.

극의 내용 중 시민군으로 나서겠다는 아들을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홀어머니역을 맡았던 강화자 씨의 아들 오현택 씨(27세)는 “엄마가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에서 마치 내가 그 아들이 된 듯 몰입감이 느껴졌고,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부산사투리를 구사하며 명랑깜찍한 캐릭터를 연기한 민정임 씨는 “대학 1학년 때 연극반 들어갔다가 그만두었는데 딸 덕분에 꿈이 이뤄졌다”며 지인들의 축하를 받느라 바빴다. 엄마의 꿈을 이뤄준 딸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박지인 씨다.

연극을 기획한 정유진 연출자는 광주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이유를 ‘기억과 위로’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광주 사건을 공부하다 당시 사람들의 ‘시민의식’의 위대함을 느껴” 시작한 이 연극은 예산지원이 전혀없이 진행된 시민연극이라는 점이 놀랍다. 대관료와 판촉비, 소품·의상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회원들이 회비를 모았지만 턱없이 부족해 결국 펀딩을 통해 320만원을 모았다. 배우와 연출자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금을 채우기도 했다.

이같은 사정을 알게된 문화예술인도 동참했다. 경기민요무형문화재인 정경숙 씨가 구성진 소리로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었고, 현대무용가 류미경 씨가 안무디자인과 독무를, 이민수 백석문화대 교수가 작곡을 맡았다. 스토리작업을 하면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3학년으로서 학생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이덕준 씨가 1박2일 동안 시민배우들과 워크숍을 함께 하며 고증을 맡아 극의 사실성을 높였다.

최용석 예술감독은 “시민배우들이 시작하고 시민들이 후원해서 완성한 시민연극”이라고 평가했다. 최 감독은 “지난해 9월 연극제목이 ‘그날’이라는 것만 알린 채 시민배우 모집 공고를 내고, 12월 워크샵 때 처음으로 내용을 공개했는데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참여했다. 젊은 청년들은 전혀 모르던 사실들에 놀라고 분노하며 많이 울고 공감했다. 보험설계사, 가정주부, 회사원, 교회 전도사 정말 다양한 분들이 모였다. 자발성으로 뭉친 시민배우들의 팀워크가 오늘의 공연을 있게 한 힘이다”라고 말했다.

시민연극 ‘그날’을 두 번의 공연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금은 ‘대관료’조차 부담스러워 또 무대에 올릴 계획을 잡기 어렵다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다시 한 번 더 많은 시민들 앞에서 공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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