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희 한국웃음유머전략연구소장

[고양신문] 정치인 등 사회적 공인들의 성희롱 발언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다른 단체도 아니고, 인권존중과 인류애의 상징인 적십자사 대표의 발언이라 여파는 더 컸다.

한 방송사의 뉴스에 따르면 박 회장이 이달 초 팀장급 직원 34명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성적인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뉴스는 박 회장이 “여자 세 명이 모인 것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질문을 던지며 여성의 신체를 비유하는 농담을 했다고 전했다. 회식 자리엔 여성 직원 9명도 있었다고 한다. 뉴스는 당시 자리에 있었던 적십자사 관계자의 말도 인용했다. “박 회장이 술잔이 돌기도 전에 성적인 발언을 해서 놀랐다. 간부들 가운데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보도 이후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박경서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여파가 커졌고, 박 회장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했다.

박경서 회장은 사과문을 통해 "직원들 앞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 중 하나로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내가 다소 늦어 실언 한 것 같다. 내가 백번 잘못했다. 사과한다."고 밝힌 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던 발언이었지만 이에 대해 직원 한 사람이라도 불편했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이 “편안한 분위기,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짜내고 짜낸 말이 결국 성희롱 발언이었다는데 대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2010년 이 단체의 부총재가 성희롱 건배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퇴까지 했던 사례가 있다. 당시 부총재의 건배사는 ‘오바마’. 부총재는 오바마에 담긴 뜻이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고 친절하게 두 번씩이나 설명을 덧붙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유명인사건 아니건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성희롱 발언이 횡횡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들 유명인사의 경우 물의를 일으킨 그 날만 문제였겠는가, 아마 일상처럼 쓰던 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까지 터져 나왔을 것이다.

말할 기회가 많거나 말을 주도해가야 하는 리더들은 좀 더 재밌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고심할 때가 많다. 어설픈 성희롱 발언으로 웃기려고 하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성희롱 발언은 그 내용이 저급하고 셀수록 인기가 높아 또 써먹겠다고 수첩에 적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제 재밌는 말, 유머를 위한 말에 성차별적인 말은 아예 제외시켜야 한다. 최근 벌어진 미투 운동의 여파로 그동안 묵묵히 감내해왔던 여성들이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란 주체의식의 변화가 크고, 무엇보다 유머와 재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깨어나야 한다.

유머와 웃음에 대해 강의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유머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말이다. 어울리는 말은 무엇보다 유머를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말이어야 하며, 진심으로 기쁘고 재밌는 말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타인과 소통할 때 쾌감을 느낀다. 그 소통은 듣는 이가 마음을 열고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동반해야 한다. 이 기술이란 너무나 심플하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은 생각을 찾아내는 것이고 이 생각을 입에 담아 말로 푸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성희롱 발언은 듣는 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최악의 언어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비하하며 재밌게 만들겠다는 심보는 남성만을 향한, 그것도 성차별 발언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일부 남성을 위한 편견이다.

나의 경우 40대 후반에 200명이 모인 곳에서 유머 몇 가지를 가지고 웃기겠다고 자청해서 나갔다가 큰 망신을 당했다.(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오히려 유머웃음강사가 되었지만)나는 그 때 아무리 좋은 유머도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자들의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상이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재밌게 만들 수 있는 언어의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해왔다. 이 짧은 지면에서 강의처럼 많은 말을 담을 수는 없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만 확인했으면 한다. 말은 듣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허공에 맴돌거나, 물의를 일으키거나, 차라리 안 한만 못하게 된다.

성희롱 유머는 이제 망신만 받게 될 것이다. 아니 그때 그때 망신을 팍 주어야 한다. 물론 그래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마음 속으로는 ‘웃기는 인간’으로 낙인찍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지식인들이여, 조금만 더 깊이 고민해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말을 찾아보자. 말은 말이 아니라 생각의 표현임을 각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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