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자연스러움은 하나의 기적이다.

우리가 4년 전에 풍동에 농장을 얻었을 때만 해도 텃밭에는 실지렁이 몇 마리만 이따금 눈에 띌 뿐 이렇다 할만한 생명체가 살지 않았다. 우리가 농장을 얻기 이전까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어온 흙이다 보니 뭇 생명들이 건강한 땅을 찾아 떠나버린 것이다.

덕분에 농사 첫 해에는 해충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고 그 피해는 심각했다. 마늘과 양파와 대파는 고자리파리의 피해로 전멸하다시피 했고, 감자와 고구마와 땅콩은 굼벵이가 신나게 먹어치웠으며, 가지와 토마토의 잎은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의 공격으로 그물망이 되었고, 김장 채소들은 진딧물과 함께 이런저런 해충들이 들끓는 바람에 적잖은 피해를 보았다.

그래도 우리는 농사의 목적을 수확에 두지 않고 일단 마음부터 비웠다. 벌레들과 나눠 먹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자연을 해치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서 농사를 짓되 그 결과는 하늘에 맡겨두고 하늘이 주시는 대로 감사히 먹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흙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과정에 충실하면서 묵묵히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을 믿고 삼 년이란 시간을 견뎠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뱀 같은 지렁이들이 흙을 파지 않아도 천지사방 돌아다니고, 비만 오면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귀가 따갑도록 울어댔다. 호미로 흙을 파면 땅강아지와 지네와 돈벌레들이 튀어나왔고, 진딧물을 잡아먹는 칠성무당벌레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도마뱀의 출현이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도마뱀을 본 적이 없는데 텃밭을 제집 안방 삼아 돌아다니는 도마뱀들을 보니 가슴이 다 설렜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일 미터가 훌쩍 넘는 구렁이까지 등장했다. 하늘에서 누가 던진 것도 아니고 농장 주변이 온통 아스팔트인데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저 놀랍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농장에 사는 새들도 그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물까치까지 합류했다.

생태계가 살아나니 해충피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봄에 농사지었던 배추와 양배추와 열무는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고, 하지에 수확한 감자는 굼벵이가 거의 입도 대지 않았다.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가 눈에 띄지 않으니 토마토와 가지의 잎도 깨끗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해마다 굼벵이 피해를 심하게 입어온 고구마와 땅콩 농사에 대한 기대가 여간 크지 않다.

이 모든 건 자연이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은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우리 농장 바로 앞에서 농사짓는 이들은 이제까지 우리 텃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매일매일 지켜보면서도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직접 목격하고서도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짓는 게 불가능하다는 편견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부자연스러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상황을 낯설어하고 불안하게 여긴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식도 그렇고, 평등보다는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며, 부자연스러운 사회 시스템을 모두에게 이롭게 바꾸려고 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을 한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의 생태계가 텃밭에서처럼 자연스러움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불안에 쫓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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