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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林悌)의 사랑과 이별<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 최재호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8.07.02 15:55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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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전 건국대 교수,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고양신문] 조선 중기 천재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임제(1549~1587)의 호는 백호(白湖), 자는 자순(子順)이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의 장인이기도 했던 그는, 고려 말 72현인 중의 한 분인 임탁(林卓)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제주목사를 지낸 바 있는 임진(林晉)이다. 임제는 젊어서부터 칼과 거문고를 함께 어깨에 메고 다닐 만큼 성격이 강직하고, 문장이 호방했던 타고난 풍류가객이었다.

그의 스승 대곡 성운(成運)은 그의 급한 성격을 순화시키기 위해 중용(中庸)을 100번 읽도록 권유했다. 임제는 스승의 뜻에 따라 속리산에 들어가 글을 읽던 중, 이제 산을 내려가도 좋다는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고 하산해, 그의 나이 28세 때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시에 급제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사화(士禍)와 당쟁 속에서 꿈을 펼치기에는 역부족, 임제는 혼란한 시국을 한탄하며 시와 술로 울분을 달래야 했다. 그러던 그의 나이 35세 때에 평안도사를 제수 받고 임지로 가던 중, 송도에 들렀을 때, 마침 기생 황진이(黃眞伊)의 부음을 듣게 된다. 평소 ‘세상만사 모두 쓸모없지만 시가(詩歌)와 미녀(美女)만은 사랑할만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 듯 누운 듯/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盞)들어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그 옛날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살아 돌아온들 이토록 애절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임제가 변방의 보잘것없는 한직에서 정5품 예조정랑으로 승차하자, 새삼 그의 지난 과거가 문제가 됐다. 임제가 ‘어명을 받고 임지로 가던 중, 관복을 입은 채로 천한 신분의 기생 무덤에 잔을 올렸다’는 것이 빌미였다. 싸늘한 세상 민심에 결국 임제는 한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직 통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호방한 그로서는 벼슬살이에 더 이상 연연할 위인은 아니었다. 임제는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팔도강산을 유람하며 음풍농월로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황진이의 무덤이 있는 송도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번 관복을 입은 탓으로 제대로 된 제를 지내지 못한 아쉬움에 그의 발길은 더욱 빨라졌다. 바로 그때 황진이를 쏙 빼어 닮은 황진이의 수양딸 설홍(雪紅)을 만나게 된다. 황진이를 다시 만난 듯 착각에 빠진 임제. 지체 높은 선비로 천한 기생의 무덤을 찾아주는 임제의 따뜻한 인간미에 마음을 빼앗긴 설홍. 그들은 서로 자석에 이끌리듯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제는 돌연 설홍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임제의 갑작스런 태도에 낙담한 설홍이 애원하듯 매달려 봤지만 임제의 태도는 더욱 더 싸늘해지기만 했다.

그러다 임제가 죽을병에 걸려 자신에게 헤어지기를 요구하게 된 내막을 알게 된 설홍은, 임제 앞에서 말없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자신의 죽음 앞두고 연인에게 새 인생을 살게 하려는 임제의 배려. 여기에 임이 없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속세(俗世)를 떠나겠다는 설홍, 이별을 준비하는 두 연인의 애틋한 사랑이 수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여기에 비해 최근 모 정치인과 여배우의 스캔들은 아마추어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사랑도 연애도 어떻게 이별하는가에 따라 그 격(格)이 달라지는 법, 이들은 이미 서로가 물러서기 어려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최재호 고봉역사문화연구소장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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