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➀ 『하늘을 나는 사자』

『하늘을 나는 사자』(사노 요코 글·그림, 황진희 옮김, 천개의바람)



[고양신문] “역시 사자야.” 고양이들은 아주 당연하단 듯이 말하며 이빨에 낀 고기를 이쑤시개로 ‘쯥쯥’ 소리 내어 쑤셨습니다. “있지, 나는 낮잠을 자는 게 취미야.” 사자가 말하자, 고양이들은 깔깔깔 웃어 댔습니다. “히야~ 요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농담도 잘하잖아?”

『하늘을 나는 사자』(사노 요코 글·그림, 황진희 옮김, 천개의바람)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사자가 고양이들에게 ‘규정’되는 순간이다. 이 그림책은 황금빛 갈기와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사자가 고양이들을 위해 날마다 날아서 사냥을 나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낮잠을 자는 게 취미였지만, 고양이들은 사자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친 사자는 돌이 되어 잠들어 버린다. 황금빛 돌이 된 사자는 몇 십 년, 몇 백 년 동안 깨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들은 사자를 ‘허구헌 날 낮잠만 자다 돌이 되어버린 게으름뱅이’로 또다시 규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 곁을 지나던 아기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묻는다. “왜 돌이 돼서 자고 있어요?” 엄마는 되묻는다. “글쎄, 왜 그럴까?” “으음… 분명 피곤했을 거예요.” 그 때, 황금빛 돌사자는 부르르 몸을 털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어흥!” 하고 우렁차게 외치며 하늘을 난다.

과연 사자를 깨운 건 무엇이었을까? 피곤했을 거라고 말해주는 아기 고양이의 위로? 사실은 그 답보다 앞선 엄마 고양이의 질문이 아니었을까? “글쎄, 왜 그럴까?”하고 묻는. 엄마 고양이의 질문에 아기 고양이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사자 입장에 서보게 된다.

누군가 입장에 서본다는 것. 그것은 그 대상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맘대로 ‘규정’하고 그것이 마치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멋진 갈기와 우렁찬 목소리, 하늘을 날아 사냥을 하는 사자의 취미가 낮잠일 리 없다고 생각한 고양이들처럼 말이다. 아마 고양이들은 몰랐을 거다. 자신들이 사자에게 고통을 주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걸 말이다. 자신들의 규정이 상대에게 억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기 안의 다른 점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 취미는 낮잠이야’ 하고 조용히 사자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사자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는 모두 고양이이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는 이래야 해.’ ‘나이 들었으면 이렇게 해야지.’ ‘학생은 이래야지.’ ‘버릇없이 왼손으로 밥을 먹으면 안 돼.’ ‘결혼은 이때쯤 해야 하고, 아기는 이때쯤 낳아야 해.’ ‘한국에서 살 거면 한국 사람이 되어야지.’… 그 사람의 고유성이나 다양성은 들여다보지 않은 체, 우리들 머릿속에서 내린 규정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양이는 살짝 억울해진다. 좀 더 강하게 끝까지 주장했더라면 인정해줄 수 있었을 텐데, 기껏 두어 번 작게 말하고 만 사자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자도 이미 규정짓기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기 진실이 다르게 규정되는 순간, 혹시 자기가 잘못된 건 아닌지 생각한다. 낮잠을 자지 않기 시작하고 힘들어 울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통일된 의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옳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다.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도 실제 다른 ‘나’를 생각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른 ‘남’을 생각해볼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현대 사회를 다양성 사회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외친다. “다른 건 틀린 게 아니야.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고!” 우리는 아직 여전히 고양이인데도 말이다.

결국, 다양성은 내 안의 고양이를 인정하고, 내 안의 사자를 깨우는 일로 시작해야 한다. 내 문제로 바라보지 않으면, 여전히 우리는 규정짓기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박미숙(책과도서관 대표 ·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누군가 말한다. “있지, 나는 낮잠을 자는 게 취미야.” “정말? 나도 낮잠 자는 게 취미야.” “그렇구나. 사실… 나는 쥐랑 밥 먹기가 취미야.” “낮잠이라고? 난 한 번도 자본 일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그건 어떤 거야? 말해줄래?”

우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답에 따라, 혹은 질문에 따라 누구나 낮잠을 자는 세상이 될지, 아닐지 결정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잠든 사자를 깨운 것도 고양이였다는 거다. 이제 어떤 고양이가 될 것인가는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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