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전임 시장은 세칭 ‘제왕’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의 왕이나 고을 원님이 그만한 권력을 누렸을까? 무슨 척도라도 있으면 비교라도 해보련만 세상이 달라진만큼 공통의 척도도 있을 것 같지 않고, 설령 있다 해도 시간 아까우니 그만두련다.

어쨌든 전임 시장은 주민들의 무진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신들린 듯 개발 드라이브 정책을 펼쳤다. 고양시가 무슨 제후국의 수도이기라도 한 듯 곳곳에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물 좋은 녹지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못내 아까운 듯 곳곳의 산야가 마구 파헤쳐졌다. 지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거나 터를 닦고 있는 국제종합전시장, 종합운동장, 덕양문화체육센터, 일산문화센터, 관광숙박단지 등등이 거의 전임 시장의 노작들이고, 신구도시 주변의 크고 작은 아파트 단지, 도시의 빈터를 빼곡이 채우며 들어선 러브호텔과 각종 건축물들은 그 부속물이다. 그에게 시민들의 삶의 질의 척도는 개발과 토목건축물이었던 게 틀림없다. 시장실은 시장의 가신들을 제외한 일반 주민들이 범접하기 힘든 공간이었고 그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고 일반 시민이고 쓴맛을 보아야만 했다.

1년 전, 4년마다 딱 한 번씩 도시의 주인이 되는 고양시민은 그를 버리고 새로운 시장을 선택했다. 새 시장은 취임 첫날부터 수수한 풍모로 시민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뜻밖에도 개발 중단과 시민들의 삶의 질을 언급하며, 선거용이 아니었던가 싶은 문화예술, 교육, 여성, 환경 정책, 시민 위주 행정 등을 실제로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면서 전임 시장의 잔재를 치울 때까지 잠시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다.

그로부터 1년,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한 시민들로부터 시장의 무소신과 우유부단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은 그에 응답했다. 언제부턴가 소신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정책을 은근슬쩍 대체한 관광 정책에 대한 소신을 내세우며 노래하는 분수대 건설을 강행하고, 국책사업 변경 불가 소신을 앞세우며 경의선 지상건설 불가피론을 펼쳤다. 문화시설의 설립과 운영을 문화예술인들에게 맡기겠다던 공약은 예산 절감과 관리 편의 소신에 짓눌리고, 주민 참여에 대한 공약은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소신에 없던 말이 되었으며, 더 이상 녹지를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늘려가겠다던 공약은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소신에 압살당하고 있다.

고양시민들은 갑자기 터져나오는 시장의 소신에 놀라고 있다. 불행한 것은 그 소신이 중앙정부에 대한 굴종, 현실에 대한 타협, 행정편의주의, 무사안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선거 팜플렛 위의 말랑말랑한 공약들은 빛이 바래고, 전임 시장의 치적들(?)은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곧 나온다던 고양시의 미래 비전은 기약이 없다.

자치 시대의 시장에게 시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하고 실행하지 않는 시장을 둔 시민들은 불행해진다. 고양시민들은 또 다시 불행해질 것인가?
<책만드는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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