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토요일이 즐겁다

각기 다른 정보와 재미를 전달하는 '걷기대장 4인방'이 있어 고양누리길 걷기가 즐겁다. 사진 왼쪽부터 황규호, 최경순, 임철호, 이성한 대장.

 

[고양신문] 올레길이 제주의 푸른 바다를, 둘레길이 지리산의 웅장한 자태를 품고 있다면 고양누리길의 자랑거리는 뭘까. 바로 매주 진행되는 토요일엔 고양누리길 프로그램을 돌아가며 인솔하고 있는 4인4색 걷기대장이다. 단순히 코스를 안내하는 이들이 아니다. 중간 중간 풍성한 정보와 흥미로운 해설을 풀어놓는 일급 해설가들이다.

각자의 관심분야에 따라 해설의 색깔도 각각 달라 같은 코스를 걸어도 다른 느낌을 선물한다.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걷기대장들이 있어 고양누리길 걷는 재미가 배가된다”고 말한다.
이들 네 사람은 고양시걷기연맹 회장(임철호)과 부회장단(최경순·이성한·황규호)을 맡고 있지만, 걷기 전문가가 된 배경과 역사는 서로 다르다. 네 갈래 길을 각자 걸어오다 고양누리길에서 비로소 만났다.
고양의 도보길을 개척하고 걷기 문화를 확산시켜 온 산증인인 걷기대장 4인방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따로 또 같이’ 고양누리길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이다.

 

유머 넘치는 생태해설의 달인
▶ 임철호 고양시걷기연맹회장

고양시걷기연맹회장, 고양신문 산악회 대장 등의 직함이 따라다니는 임철호 대장은 걷기와 자연 생태 이야기를 결합한 해설을 펼친다. 숲해설가이자 고양생태공원 강사이기도 한 임 대장은 사계절 변화하는 모든 생태계를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다.

“생태는 어제와 오늘이 늘 달라요. 그렇기에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아도 고양누리길을 걸으며 만나는 나무와 꽃, 풀벌레를 함께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우리 곁에 이토록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전하면 모두들 흥미롭게 눈빛을 반짝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산을 1800회 넘게 오른 마니아다. 젊은 시절부터 시간만 나면 무작정 신발끈 졸라매고 북한산을 찾았다.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할 때도 남들처럼 도서관을 찾지 않고 배낭에 책을 넣고 북한산에 올라 공부를 했다고 한다. 생명의 신비에 눈을 뜨게 해 준 곳도, 걷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곳도 당연히 북한산이다.

생태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이런 저런 뒷이야기를 끌어다 붙이는 구수한 입담도 인기를 더해주는 비결이다. 해설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 간간이 자연과 지리, 역사를 넘나들며 재밌는 퀴즈도 낸다. 때로는 생물의 번식습성을 설명하며 19금을 넘나드는 설명을 펼쳐 ‘걷기 해설계의 신동엽(아슬아슬 유머의 달인)’이라는 재밌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임 대장은 “음담패설이 아닌 음담팩트”라고 명쾌하게 해명한다.

고양누리길 14개 코스 중 가장 좋아하는 길로 그는 북한산누리길을 꼽았다.
“북한산누리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하는 북한산둘레길과 겹쳐지기 때문에 오히려 고양시민들에게는 조금 소외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산 영봉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고양땅의 매력적인 흙길입니다.”

그는 고양누리길 해설을 진행하며 홀로 걷기에 참가한 이들끼리 어느새 사이좋은 이웃처럼 친밀해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만나고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고양누리길이 곁에 있습니다. 누구든 작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찾아오세요.”
 

깊고 재밌는 역사해설
▶ 최경순 고양들메길 전 대표

향토역사전문가 최경순 대장은 고양땅에서 본격적인 역사유적답사의 문을 연 장본인이다. 오래전부터 역사와 한자에 관심이 많던 그는 20여년 전 고양으로 이사를 오며 마을 주변의 큰 무덤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양에 와 보니 곳곳에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더라구요. 눈이 번쩍 뜨여서 여기 저기 신나게 찾아다녔습니다. 나 혼자 보기가 아까워 주변 사람들에게 동행을 권유하다보니 어느새 모임이 만들어졌지요.”

야산에 흩어진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레 오솔길을 알게 되고, 걷기와 역사답사를 결합하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답사모임 고양들메길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고양시 주변에 걷기 좋은 야산 오솔길이 보존된 이유를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했다.
“다른 곳 같았으면 진작에 밭이나 과수원으로 개간될 땅이 여전히 야산으로 남아있는 곳이 많습니다. 주로 상류층 사대부들 소유지 입니다. 그들에겐 농사보다는 조상을 모시는 선산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지요.”
깊이와 재미를 고루 전해주는 까닭에 주변에서 최 대장을 ‘가장 고급진 정보를 전달하는 누리길 해설가’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그는 역사해설의 관점에서 고양동누리길을 최고의 코스로 추천한다.
“고양동누리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영 장군, 소현세자의 후손, 귀성군 이준, 연산군의 처남 신수영 등 대개는 역사의 패자들이죠. 패자들에게는 제가 가산점을 주는 편이라 애정을 담아 해설을 하게 됩니다.”
그는 고양동과 선유동 인물들을 연결해 응용한 ‘공주길’과 ‘왕자길’을 만들기도 했다.

최경순 대장은 토요일엔 고양누리길 프로그램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호회는 지속성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는 폐쇄성을 지니기도 해요. 그에 반해 누리길 걷기는 문턱이 낮아 누구든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애착과 정주성을 높이는 데 걷기만한 게 없지 싶습니다.”
 

"고양의 아름다운 자연,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 그리고 깊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고양누리길을 함께 걸어보세요."

 

감성 저격, 마을 스토리텔러
▶ 이성한 고양올레 전 대표

이성한 고양올레 전 대표는 고양시 최고의 ‘마을 스토리텔러’다. 그는 인문적 해설과 함께하는 걷기동아리 고양올레를 만들었고, 한양문고에서 ‘도시의 속살 여행’을 꾸준히 진행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주말마다 함께 바깥으로 나가곤 했어요.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아예 어울림체험학교를 만들어 어린이·청소년 문화유산답사 활동을 펼쳤죠.”

자녀들과의 여행에서 시작된 그의 걷기 열정은 고양시 곳곳에 둘레길을 여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10여년 전 제주올레를 탄생시킨 서명숙 이사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고양에서도 바로 길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아파트가 주를 이루는 고양시가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다보니 향토성이나 정주의식이 선명하지 못해요. 길을 내서 걸으면 우리 지역을 바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리라 생각했어요.”

당시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던 그는 걷기와 생태, 역사를 하나의 결로 묶어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마을길을 살피는 미시적 안목과 인문적 해석을 접목하는 거시적 관점을 아우르게 됐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그의 해설을 “정보 전달력이 높고 해설의 품이 가장 넓다”고 평한다.

이런 장점은 고봉누리길 해설에도 적용된다.
“고봉산과 황룡산이 이어지는 고봉누리길에는 금정굴이 있고, 기무부대가 관할하는 대북방송 송전 철탑이 있고, 웅어의 전설이 전해오는 만경사가 있습니다. 장희빈 친정 묘역과 시민들이 훼손을 막아낸 안곡습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구요. 과거와 현재를 두루 관통하는 풍부한 스토리를 가득 품은 곳이 바로 고봉누리길입니다.”

그는 걷기의 장점을 ‘느림’에서 찾았다. 외부 동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육체만을 활용해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동시에 주변을 관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함께 걷는 이들에게 지적 자극과 소통의 욕구를 살짝 열어주는 것이 걷기 해설의 역할이 아닐까요.”


사람과 자연 관계 살피는 시선
▶ 황규호 고양파주누리길동호회 명예회장

식사동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황규호 대장은 관련 자격증을 12개나 지닌 건물관리 전문가다. 동시에 관련 직종 종사자들 사이에서 ‘걷기 전도사’로 통한다. 2011년 고양과 파주의 건물관리인들로 구성된 고양파주누리길동호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축구 마니아였는데 10여 년 전 허리부상을 입고 조기축구를 은퇴했죠. 건강을 지키려고 걷기를 시작했다가 지금은 축구보다 더 재밌는 걷기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걷기가 신체뿐 아니라 건물관리사와 같은 감정노동자들에게도 가장 좋은 활동이라고 말한다. 함께 걸으며 동일한 관심사를 이야기 하고, 자연의 변화를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정서적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황 대장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 구성을 살피는 것으로 누리길 해설 포인트를 잡는다. 생물시간에 배운 용불용설과 진화론 등은 그가 해설에 자주 활용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똑같은 식물이지만 어느 자리에 뿌리를 내렸느냐에 따라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배운 것들이 단순히 이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가장 간결하고 명쾌한 해설자로 불리는 그는 길이라는 것이 자연과 인간의 대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자연의 자리에 마을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삶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 보이지 않는 질서와 원리가 숨어있으며, 그 질서를 길을 통해 살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도시공학적 관점이 가장 빛을 발하는 코스는 역시 호수공원과 라페스타, 웨스턴돔을 연결하는 호수누리길이다.
“도시를 설계할 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호수공원을 일산 신도시의 한가운데 조성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죠.”

자연과 인공 건축물의 조화를 설명하기에 좋은 또 하나의 길로 그는 바람누리길을 꼽았다.
“창릉천을 따라가는 물길 바람길을 걸으며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를 함께 생각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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