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회 외유성 해외연수 '이제는 그만'

 ▲앞으로 4년간 일하게 될 33명의 제8대 고양시의원들.

정의당 의원들, 첫 연수 일정 중
“동굴 관람은 관광”이라며 불참

[고양신문] 지난달 말 고양시의원으로 당선된 정의당 시의원 4명(박시동·박소정·박한기·장상화)이 시민들에게 10가지 약속을 했다. ‘5무5유 원칙’이란 이름의 선언은 꼭 해야 할 5가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5가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는 외유성 해외연수, 이권 개입 등이 있었고 꼭 하겠다는 약속에는 표결실명제, 업무추진비 공개 등이 있었다. 이중 의회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안 된 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약속은 ‘외유성 해외연수’다.

고양시의회 정의당 의원 4명은 ‘5무5유 원칙’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개원 후 첫 외부활동인 시의원 전체연수의 일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이 ‘단순관광’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 12, 13일 1박2일간 열린 ‘고양시의회 의원연수’는 33명 전체 시의원을 대상으로 강원도 삼척에서 진행됐다. 연수 일정은 지방의회 관련 교육과 석회동굴(환선굴) 관람이었다.
정의당 의원들은 이번 연수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한 끝에 ‘연수에는 참석하지만 마지막 일정인 동굴 관람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의당 장상화 시의원은 “처음엔 시의회 연수를 왜 강원도 삼척에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시의회 사무국 공무원들과 의원들 간 단합차원의 숙박이라면 고양시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굴관람은 순수한 관광차원 아닌가. 다른 동료의원들과 함께 단체버스를 타고 귀가할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일정을 함께 하지 않고 굳이 각자 귀가하는 귀찮은 선택을 한 이유는 외유성 연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4년간 총 22회 해외연수

고양시의회 의원이 해외연수를 떠나는 경우는 의원당 1년에 1~2회다. 각 상임위별로 1년에 한 번의 해외연수를 갈 수 있다. 연수 비용은 의원 1명당 280만원까지 지원된다. 작년까지 1인당 250만원 이었던 지원금액이 올해엔 30만원 더 올랐다. 33명의 의원 수를 합하면 1년에 약 9200만원, 임기 동안인 4년간 3억7000만원을 해외연수 비용으로 시 예산이 쓰이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수행원(공무원) 여행비용은 따로 4년간 약 3억2000만원이 투입되고 상임위 연수 외에도 1년에 1~2차례 떠나는 ‘국제도시 간 우호교류 연수’까지 더하면 의원들에게 들어가는 해외연수 비용은 대폭 추가된다.

그렇다면 지난 7대 의회에선 몇 차례의 해외연수가 진행됐을까. 4년간 총 22회였다. 4개의 상임위별로 매년 1차례씩 총 16번, ‘국제도시간 우호교류’가 6번 진행됐다. 다녀온 도시도 다양하다.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하곤 각 대륙 곳곳을 다녀왔다. 서유럽, 동유럽(발칸반도), 북유럽·러시아, 중국, 미국, 캐나다, 호주, 동남아시아, 일본 등이다.


‘4시간 공식일정’으로
'9일간 스페인' 연수 떠나기도

지난 7대 의회에서 다녀온 해외연수를 살펴보면 공식일정을 나름대로 잘 소화한 연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공식일정이라 하면 각 기관(대학·정부·기업 등) 관계자가 직접 안내하는 경우를 말한다.

12일 일정(2015년 3월 출발)으로 유럽을 다녀온 당시 문화복지위원회는 유럽 6개 국을 방문했지만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는 공식일정이 전혀 없었다. 또한 차량으로 3~4시간씩 이동한 나폴리와 피렌체에서도 ‘문화탐방’이라고 표현한 관광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2016년 10월 떠났던 9일간의 스페인 해외연수(문화복지위) 일정은 더욱 심각했다. 9일의 연수기간 동안 공식일정은 이틀 동안 몰아서 소화할 수 있게 했다. 4개의 공식일정도 협동조합과 연구소를 4시간 동안 방문한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나마 2곳의 미술관 방문을 공식일정에 포함시켰는데, 미술관 방문을 공식일정으로 잡지 않았다면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총 4시간이 9일간의 전체 연수기간 중 순수한 공식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도시의 협동조합과 연구소를 4시간 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기 위해 시의원 9명과 공무원 4명이 스페인으로 7박9일간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 외에는 공식일정에 포함시킨 미술관 관람과 함께 스페인 여러 도시들(마드리드·코르도바·세비아·그라나다·바르셀로나·사라고사)을 돌며 ‘문화탐방’을 즐겼다.

▲2016년 10월 고양시의회 의원들이 떠났던 9일간의 스페인 해외연수(문화복지위) 일정. 미술관 방문을 제외하면 공식일정은 총 4시간이 전부다. <출처=공무국외 출장 결과보고서, 고양시의회 홈페이지>


동료의원들이 심사하는 해외연수

이런 식의 해외연수가 가능한 이유는 해외연수에 대해 의원들이 전문성을 동원해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을뿐더러, 해외연수를 객관적으로 검증할만한 시스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먼저 상임위별로 해외연수를 떠나게 되는 절차를 살펴보면, 의원들이 연수 주제와 도시를 정하지만 결국은 주제에 맞춰 연수전문 여행사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의원들이 그중 한 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전부다. 의원들이 선택한 연수일정은 ‘심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심사위원회는 ‘의회운영위’가 맡게 돼 있다. 즉 외부 인사가 의원들의 연수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의원들이 심사를 맡게 되는 것. 동료들이 심사를 하게 되다보니 심사의 객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공무원인 의회사무국장이 연수의 일정과 목적을 설명하는 시간 외에는 연수에 대해 질의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고 약 10분이면 심사가 종료됐다. 의원들 간 질의가 오간 경우도 일부 있었다. 한 회의록에는 “10박12일이 뭡니까? 이렇게 오래 간 적은 없어요”라는 심사위원장(의회운영위원장)의 말에 한 의원이 “문화복지위는 문화를 느끼고 복지도 보고 와야지요. 문화복지 아닙니까?”라는 답을 내놓았고, 심사위원장은 “알겠습니다”라는 답변으로 마무리하고 원안대로 가결됐다. 심사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회의록 자료 중 하나다.


공무원이 작성하는 연수 결과보고서
의원들이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 필요
 

심사위원회를 외부인사로 채우는 것 외에도 연수의 투명성을 더하는 방법은 찾아보면 다양하다. 현재 고양시의회는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 결과보고서는 한 달 뒤에나 올라가기 때문에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한 달 전 일을 문제 삼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보고서 내용도 의원들의 소감이라기 보단, 공무원들이 대부분 직접 작성하게 된다. 작성 전에 의원들의 소감을 묻는 경우도 있지만 피드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알아서’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공무원은 “시의원들의 소감을 취합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연수 후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시의회 자치규법’에 따르면 결과보고서는 15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돼 있다. 사실상 이 규정은 사문화 됐다고 볼 수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연수일정을 연수 출발 전에 공개하고, 결과보고서에 여행비용에 대한 회계자료도 함께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해외연수에 대해 시민들의 감시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란 얘기다.

이에 대해 시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윤용석 의원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장치 등을 구상하고 있고,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연수결과를 보고하는 공식적인 자리도 이번 의회에선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5대 시의회에서 심사위원회를 외부인사들이 맡은 경우가 잠깐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원래대로 돌아갔다”며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외부인사로 심사위원회를 꾸려보는 것을 검토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연수를 다녀온 이후 의원들이 단체로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며 연수 보고회를 갖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수에 대한 피드백, 빠르고 세밀하게”

장상화 의원은 “연수를 다녀온 이후 의원 개별적으로 연수보고서를 시민들에게 자율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의원들이 연수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보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기획행정위원회의 국내연수를 보면 관광일정 없이 부천·군산·전주·완주 4개 도시 5개의 기관을 알차게 돌아보는 일정으로 꾸려졌다”며 “이번 의회에서는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연수가 되도록 의원 스스로 더 엄격한 잣대로 연수일정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용석 의원은 여행사를 통한 연수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덜 알려져 있지만 꼭 가 보고 싶은 기관들을 여행사에 제안하면, 여행사 리스트(기존 섭외 목록)에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높은 수수료를 부르는 경우가 많아 무산되는 예가 많다”며 “단체 연수의 특성상 여행사가 제안하는 일정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점도 일정부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외유성 해외연수에 대한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점은 사실이기 때문에 해외연수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연수에 대한 피드백도 빠르고 세밀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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