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근대기록물연구소 번역·편찬

100년 전 신문에서 고양군 기사 모아
당대 사회와 민초들의 생활상 ‘생생’

 


[고양신문] 1920년대 고양땅에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무일근대기록물연구소(소장 송종훈)가 발간한 『고양 1920’s』(편역 송종훈, 무일NP)은 1920년대 신문에서 고양군에 관한 기록만을 골라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엮은 책으로서, 당대의 사회상과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책은 1920년 4월부터 1927년 2월까지의 신문기사를 날짜순으로 실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무척 흥미롭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우선 일산, 지도, 행주, 능곡, 원당 등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지명이 고스란히 발견된다. 그리고 일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일산초등학교)와 일산수리조합 등 유서 깊은 학교나 기관의 기원을 살필 수도 있어 오늘날로 이어지는 시간의 상상력을 수시로 자극한다.

책에 묘사된 선조들의 삶은 너무도 피폐했다. 일제의 수탈과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시달리던 농민들의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묘사되고, 익사, 동사, 병사, 자살 등의 비참한 사망사건도 쉬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지역사회를 위해 조합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태는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졌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신문 행간을 통해 나라 잃은 설움과 독립을 위한 싸움을 이어간 이들의 기개가 읽히기도 한다.

무일근대기록물연구소가 자발적으로 진행하던 번역작업은 2018 고양시 자치공동체 지원사업의 후원을 받아 비로소 반듯한 책으로 선보이게 됐다. 책의 편저자인 송종훈 소장은 고양시에서 오랫동안 천자문과 사자성어 강의를 진행해 일명 ‘훈장님’으로 불리고 있다. 송 소장은 “무일근대기록물연구소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수많은 근대 기록을 현대인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1차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면서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시대별, 테마별 근대기록 번역물 시리즈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종훈 무일근대기록물연구소장은 한자와 고문체로 적힌 근대기록물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작업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

 

“아무도 읽지 못하는 기록물은 종이조각일 뿐”

<인터뷰> 『고양 1920’s』 출간한 송종훈 소장

 

천자문 강의하며 ‘훈장님’ 별명 얻어
근대 기록물 테마별 번역작업에 몰두
“내 작업물이 누군가의 창작에 도움됐으면”

 

송종훈 소장은 "지금까지 천자문을 500번 썼다. 앞으로 500번만 더 쓰고 싶다"고 말했다. 송 소장이 자신이 쓴 한자노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고양시 도서관, 농협연수원, 감사교육원, 병원 등에서 천자문과 고사성어를 오랫동안 강의했다. 한문과 고전의 뜻과 의미를 대중들이 알기 쉽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고전소통가’로 불러 줬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일제강점기의 신문기사를 현대인들이 읽을 수 있게 번역해 책자로 엮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 다양한 번역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한자·한문 관련 책으로는 『마음으로 읽는 천자문』, 『한자급수교재』, 『한시백잔(술과 관련된 한시를 모은 번역서)』 등이 있고, 한자로 쓰인 근대 기록물을 번역한 작업으로는 『일제강점기 고양군 뉴스』, 『근대 호랑이 이야기』 등이 있다. 한자교육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대한민국 교육부문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지난해 『마음으로 읽는 천자문』이 (사)대한번역가협회 출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고양 1920’s』를 기획한 동기는.

근대 기록물은 겨우 100여 년 전에 쓰여졌지만, 한자가 많고 고문체를 사용한 탓에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도 해독하지 못한다. 어마어마한 정보를 품은 근대기록물이 활용되려면 누군가는 현대어로 옮겨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고양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관련된 기록을 꼭 번역해보고 싶었다.

▶ 원문은 어떤 자료를 사용했나.

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사다. 포털사이트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원전 이미지를 다운받아 번역작업을 했다. 자료수집과 번역에 꼬박 5개월이 걸렸다. 지면상태나 해상도가 떨어져 한자가 명확하지 않은 게 많았고, 한글 발음으로만 적혀 있는 단어는 정확한 한자를 추측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작업 내내 옥편과 백과사전, 국어사전을 끼고 살아야 했다.

▶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을 꼽는다면.

장항리(지금의 장항동) 벌판에 일본의 농부들이 집단 이주해 조선사람의 땅을 조직적으로 빼앗는 모습이 나오고, 경성에서 폭탄을 던진 애국지사가 능곡역에서 하룻밤 자고 신의주로 떠나는 이야기도 나온다. 책이 나오기 전엔 아무도 모르던 이야기 아닌가.

▶ 이 책이 어떻게 활용되면 좋겠나.

고양시는 물론 이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100년 전 아픈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오늘이 있기까지 조상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각 마을이 등장하는 스토리를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재생산하는 자료로 삼았으면 좋겠다.

▶ 향후 계획을 들려달라.

최근 1930년대 자료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40년대 이후도 꾸준히 작업하고 싶다. 그밖에도 일제 강점기 호랑이 늑대 이야기와 항일의 불꽃 의열단과 관련한 신문자료를 번역한 책도 스토리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아 출간할 예정이다. 적절한 테마를 기획해 1차 번역작업을 하는 것까지가 내몫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 번역 결과물을 바탕으로 2차 문화 콘텐츠를 재생산하게 되길 바란다. 『고양 1920’s』를 1권으로 발간한 ‘사평총서(역사를 공평하게 기록하자는 의미)’를 딱 100권까지만 내 보고 싶다(웃음).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