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수남> -소설가 최인훈 선생님을 기리며-

정수남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 7월 23일 우리는 뜻하지 않은 비보를 접했다. 소설가 최인훈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었다. 물론 그동안 병환이 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남북의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데 이어 북미회담까지 열어 이제는 정말 분단의 벽이 허물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이때에 분단문학의 새 지평을 연 선생님의 타계 소식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부음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 ‘님의 침묵’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떠올렸다.

님은 갔습니다 /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드리지 아니하얐습니다 /

그래서 그럴까. 선생님은 그토록 갈망하던 통일을, 한용운 선생님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1960년 발표한 선생님의 대표작 ‘광장’은 중립국으로 향하다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드는 ‘이명준’을 통해 남북의 이데올로기 갈등과 허구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이는 실향민인 선생님이 ‘현대사라는 수갑을 찬 한국의 작가는 정치와 역사를 빼고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지론을 몸소 보였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명준’이란 불우한 지식인이 모순과 혼돈의 분단세계와 싸우는 것은 결국 선생님 자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선생님은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가셨다.

그 첫째는 작가가 갖추어야할 작가적 정신이다. 선생님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오직 문학 하나를 붙들고 올곧게 살아오셨다. 척박한 풍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체나 모임에도 앞장서지 않았으며, 정치적 사회적 발언도 삼갔다. 선생님은 그 모든 것을 작품으로 드러내었다. 병상에서도 새 작품을 구성할 정도로 진력하였으며, 대학교 강단에서도 작가란 모름지기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광장’을 수차례 개작한 것도 단순히 작품의 메시지를 가다듬기 위한 것만으로는 볼 수가 없다. 지금 한국 문단을 이끌고 있는 많은 작가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그와 같은 순수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형식이나 주제에 안주하거나 구애받지 않고, 선생님은 늘 새로움을 추구했다. 전통적 리얼리즘 기법을 떠나 환각과 환청을 통해서도 자유롭게 자의식을 드러냈으며, 실험적인 시도는 물론, 때로는 패러디라는 예술형식과 기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물론 ‘웃음소리’, ‘회색인’, ‘화두’, ‘구운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의 소설에서도 드러났지만, 7편의 희곡작품에서도 빛을 냈다. 새로움의 추구란 어찌 보면 망각하기 쉬운 작가적 사명이며 생명이기도 한데 선생님은 이처럼 끝없이 새로움을 좇아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후학들에게도 도전의식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돌아보면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최인훈 문학의 영토는 쉽게 측량하기 어렵다’는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주장은 그른 데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제 선생님은 우리 곁에 아니 계신다. 회령에서 원산으로, 그리고 한국전쟁 때 월남한 선생님은 생전에 그토록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그렇게 보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이루지 못한 숙제를 안겨주고 가셨다고 할 수도 있다. 70년이 넘도록 무너지지 않고 있는 이 분단의 벽. 이념으로 단단하게 굳어진 그 벽을 하루 속히 허물고, 종전을 선언해야 한다는 이 지상명령과 같은 숙제는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몫으로 남게 되었다. 그 숙제를 푸는 날 선생님께서는 비로소 광장에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쉴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선생님은 늘 학처럼 꼿꼿하였고, 진지했으며, 과묵했다. 불광동에 거주하실 때 몇 차례 이호철 선생님을 따라가 말석에 앉아 뵌 게 고작인 이 후학이 선생님의 문학에 대해 잔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과람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나 평생 문학을 붙들고 살아오게 한 그 기둥이 선생님이었다는 고백을 들으면 선생님께서도 조금은 용서해주시리라 믿는다.

선생님의 장례는 많은 문학인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문인장으로 모셨다. 날마다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이 복더위 속에 그렇듯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선생님은 지금 광장 어디쯤에 서서 누구를 기다리고 계실까. 이 뜨거운 땡볕 아래 서성거리고 계실 선생님이 벌써 그리워진다.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선생님, 분단되지 않은 그곳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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