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에서 소박한 노년 보낸 고양의 이웃, 고 최인훈 작가

명예나 권력에 거리 둔 꼿꼿한 삶
제자들 주례는 언제나 흔쾌히 수락
전쟁의 아픈 역사 마지막까지 주목
고양 금정굴 현장 가보고 깊은 관심

 

제자들이 마련한 팔순연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최인훈 작가. <사진제공=김종순 문학평론가>


[고양신문]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인 고인은 올해 초 대장암 진단을 받고 고양시 화정동 자택 근처인 명지병원에 입원해 병과 싸우다 눈을 감았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작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9년 ‘자유문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새벽’지에 『광장』을 발표하며 전후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남과 북 양쪽의 정치체제를 냉철하고 객관적 시선으로 비판한 그의 작품은 이데올로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문단을 넘어 한국 지성계에 커다란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후 최인훈은 단편집 『총독의 소리』, 장편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문학적 성취와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두루 갖춘 작품으로 문학사를 풍성히 살찌웠다.

1970년대에는 소설가가 아닌 극작가로서의 행보를 이었다. 대표작 ‘옛날 옛적 휘이 훠이’를 비롯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둥둥 낙랑둥’ 등의 희곡을 발표하며 우리민족의 고전과 설화 속에서 인류 보편의 정신을 찾는 작업을 이어갔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양성하다 2001년 정년퇴임한 최인훈 작가의 마지막 작품은 2003년 발표한 ‘바다의 편지’다.

장례는 문학인장(장례위원장 김병익)으로 치러졌고, 장례 기간 중 정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장지는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자하연’에 모셔졌다.
 

최인훈 작가의 대표작 <광장>이 발표된 잡지 '새벽'(1960년)의 표지와 지면. <사진제공=김종순 문학평론가>


최인훈 작가의 영면 소식이 우리에게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가 생의 마지막을 고양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18년 전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고양시 화정동 은빛마을 5단지로 이사를 와 부인과 아들 부부와 함께 지냈다. 그러나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는 행보 없이 소박하고 조용하게 노년의 삶을 산 까닭에 대작가가 고양의 이웃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의 제자이자 최인훈의 희곡을 연구해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문학평론가 김종순 박사는 최인훈 작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지인 중 한 명이다. 김 박사는 그를 “자신의 글과 생각, 그리고 삶이 늘 일치했던 분”이라고 회고한다. 한국문단의 가장 존경받는 원로의 한 명이었지만, 어떤 종류의 권위나 권력도 욕심낸 적이 없이 마지막까지 오직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진정한 ‘작가’로 사셨다는 이야기다.

그렇듯 반듯하고 엄격한 분이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지인이나 제자들에게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결혼을 앞둔 제자들이 어렵게 주례를 요청하면 흔쾌히 수락하고, 삶의 지침이 되는 주례사를 들려주곤 했다는 게 김 박사의 회고다.

“어느 해 스승의 날 최 선생님을 찾아뵙고 어디든 나들이를 다녀오자고 하자,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를 가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물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연천 화이트교 근처의 오래된 냉면집에 들러 냉면을 맛있게 드시기도 했구요.”

전쟁이 남긴 아픈 역사는 작가가 끝끝내 붙든 화두였다. 그는 고양땅에서 벌어진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 현장인 황룡산 기슭 금정굴을 김 박사와 함께 찾기도 했다.
“노구를 이끌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천막으로 덮인 굴 안을 들여다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셨어요. 표현은 잘 안 하셨지만, 고양 땅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많으셨지요.”

김 박사는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판문점에서 만나 65년 종전의 역사를 끝내기 위한 첫 발을 뗀 요즈음, 최인훈 작가의 작품과 정신세계가 다시금 재조명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일찌감치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선구자적 소명으로 공존과 화해를 꿈꾸었던 최인훈 작가를 기리는 움직임이 선생님이 말년을 보내고, 영면에 드신 고양시에서 시작됐으면 합니다.”
 

고양시 화정동 자택에서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김선주 건국대 교수>

 

이데올로기가 낳은 비극의 현장인 고양시 황룡산 기슭 금정굴을 찾은 최인훈 작가가 천막이 덮인 굴 안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김종순 문학평론가>

 

고양에서 소박한 일상을 보내며 팔순을 맞이한 최인훈 작가를 위해 제자들이 축하자리를 마련했다. 사진 아래 가운데가 최인훈 작가. 왼쪽은 고인에 대한 추억을 들려준 문학평론가 김종순 박사. <사진제공=김종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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