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더워도 너무 덥다.

살인적인 폭염이 연일 계속되면서 농장풍경이 예년과 사뭇 달라졌다. 주말만 되면 한낮에도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밭일을 하다가 점심밥과 함께 권커니 잣거니 막걸리 잔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요즘은 해만 나면 농장에서 사람구경을 할 수가 없다. 다들 새벽이나 저녁에 나와서 후다닥 밭일을 해치우고 횅하니 사라지기 때문이다.

농사일에 단련이 된 나 역시도 오전 열 시만 되면 집으로 피신을 했다가 저녁 여섯 시 무렵 다시 농장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도 한 시간 남짓 일을 하고나면 온몸이 땀에 절고 어지럼증이 인다. 작년까지는 한 여름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농사를 지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었다.

잘 아는 후배의 고향 마을에선 마을 사람들끼리 오후 네 시 이전에는 밭에 나가지 않기로 규칙을 정했다고 한다.

이제 곧 가을농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놈의 무더위가 언제까지 기승을 부릴는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일하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농사가 어떻게 될는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농사는 사람이 짓지만 그 결과는 하늘이 주관한다는 말처럼 작물은 날씨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장채소는 고온장애를 입으면 제대로 자라지를 못한다. 만약 구월에 접어들어서도 기온이 삼십 도를 웃돈다면 김장채소 대란이 일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어디 김장채소 뿐일까, 상추 같은 잎채소들도 금방 꽃대가 올라와서 상추가 아니라 금추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칠월 하순에는 농장 근처에 삼겹살집을 차린 농장회원에게 개업선물 삼아 여름상추 모종 백오십 개를 심어준 일이 있다. 여름상추는 고온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품종개량을 한 작물인데도 사흘 뒤 살펴보니 모조리 타죽고 말았다.

더위는 어찌어찌 참고 견디겠는데 농사가 이러니 내심 두려운 생각이 든다.

재앙에 가까운 이상기온으로 애호박과 오이를 폐기처분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멜론은 타죽고, 복숭아와 사과농사를 짓는 친구는 과일이 열상을 입어 올 농사 망했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올해 농사가 아니라 내년 농사이다.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만에 하나 내년이 올해보다 더 뜨겁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으로도 겁이 난다.

몇 해 전 배추와 고추 농사가 망해서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을 때 이게 식량대란의 신호탄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일수도 있겠지만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기후변화 앞에서 자꾸만 두려운 생각이 든다.

한동안은 식량대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올해 전국을 강타한 이상고온이 식량대란이라는 시한폭탄의 단추를 누른 징후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확률을 따져가며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마음 놓아도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여기엔 모순이 존재한다. 만약 식량대란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가능성이 0.5퍼센트라고 가정해보자. 이때 사람들은 0.5퍼센트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대신 별 거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물론 개개인은 그런 판단을 해도 된다. 그러나 국가는 그러면 안 된다. 국가는 0.5퍼센트가 아니라 0.005퍼센트의 가능성에도 대비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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