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 사유화에 대항하는 커먼즈 운동, 경의선공유지

경의선공유지에서 열리는 시민장터에는 반상회 회의를 거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사진은 경의선공유지 야시장 모습. <사진제공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

기획취재 | 공유자산화와 고양시 도시재생의 미래

[고양신문] 경의선 철로가 지하화됨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경의선 공유지. 대기업에 의한 개발계획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여 이곳을 도시난민을 위한 ‘26번째 자치구’로 선언했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기존의 개발주의 방식이 아닌 공간에 대한 기획부터 운영방식까지 함께 논의하고 참여하는 주체적·창조적 시민들과 함께 대안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경의선공유지를 대안적 도시재생모델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이번 기획취재는 국내 커먼즈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경의선공유지운동사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공덕역 1번 출구에 내려 마포우체국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화려한 빌딩숲 속에서 이질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낡은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들이 즐비해 있는 곳. 입구로 들어서면 ‘경의선공유지’라는 푯말이 방문객을 반긴다. 맞은편을 바라보면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이 담긴 안내문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은 본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공유재(Commons)입니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우리 모두의 것인 공유지를 우리 힘으로 가꾸어 나가고자 합니다. 공간에 대한 기획부터 운영까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으로 공유지의 가치를 되살리고 확장해가는 활동을 해나갈 것입니다.”

공유지 점유투쟁 통해 탄생
경의선공유지의 역사는 2004년부터 추진된 경의선 지하화 사업에 의해 탄생한 유휴철도부지에서 출발한다. 지하화된 철도구간을 따라 경의선 숲길이라는 도시공원이 조성되고 그 주변에서는 역세권개발이 이뤄졌다. 경의선공유지 부지 또한 2014년 철도시설공단과 이랜드가 사업추진을 위한 MOU를 맺었으나 별다른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이후 마포시민단체들의 제안으로 이 공간에서 ‘늘장’이라는 시민시장이 운영됐지만 2015년 12월 사용기간이 만료되면서 이내 떠나야 할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기간만료가 다가올 즈음 늘장에 참여했던 몇몇 시민들은 “이곳은 건설자본에 의한 개발이 아닌 시민들이 운영하는 공간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스콰팅(도심의 빈 공유지를 점유하는 문화운동의 일종)을 하기로 결정한다. 김상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정책팀장은 “이때부터 늘장협동조합을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이라는 이름의 단체로 전환하고 이곳을 시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대안적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며 “철도부지 특성상 매매가 불가능한 국공유지라는 측면과 이로 인해 개발욕구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측면 때문에 ‘무단점유’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쫓겨난 이들을 위한 ‘26번째 자치구’선언
경의선공유지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이곳에는 다양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시민시장이 운영될 때부터 셀러(판매자)로 참여해온 시민들뿐만 아니라 마포구에 의해 강제 철거된 아현포차 노점상들, 성동구 옥탑방에서 내몰린 세입자 청년들, 청계천 시장에서 가든파이브로 쫓겨난 뒤 그곳에서 명도소송을 당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된 상인들. 제각기 사연은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행정과 자본에 의해 비자발적 이주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경의선공유지 안내지도

2016년 11월 경의선공유지 구성원들은 포럼을 통해 이들을 ‘도시난민’으로 명명하고 경의선공유지를 도시난민들이 일시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망명지, ‘26번째 자치구’로 만들어 갈 것을 선언했다. 김상철 정책팀장은 “도시라는 공간은 소유권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있어 한번 쫓겨난 이들은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게 된다”며 “때문에 경의선공유지가 이들을 일시적으로 머물게 하고 자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시민주체들 반상회 통해 운영
이처럼 경의선공유지는 출발부터 특별한 기획을 갖고 출발했다기보다는 다양한 계기와 우연성이 겹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함께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아현포차 노점상과 같은 도시난민뿐 아니라 물건을 판매하는 셀러들, 예술가, 인근에 사는 아이엄마 모임, 이 지역에서 가장 큰 300명 규모의 회원을 보유한 마라톤동호회 사무실도 있었다. 작년까지는 호주에서 온 마크라는 외국인도 이곳에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경의선공유지에서 ‘다락방’이라는 서브컬처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배리씨는 “2014년 당시 이곳에 열렸던 늘장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 둔 이후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경의선공유지를 다시 찾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굉장히 이질적인 주체들이 모여 있는 만큼 운영방식도 흥미롭다. 우선 경의선공유지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들은 매주 반상회를 통해 이곳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규칙을 정한다. 화장실 청소순서, 쓰레기 처리방법부터 외부 상인이 들어올 경우 품목이 겹치면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

경의선공유지에서 제작하는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X26번째 자치구 계간소식지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커먼커먼커먼즈'. 커먼즈 운동의 가치에 기반한 공유적인 실천과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기 위해 기획됐다. <사진제공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반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이곳에 대한 외부탄압에 대항하는 한편 대외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정당성을 알리는 일을 진행한다. 일종의 사무국 역할이다. 

“이곳 공유지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주체들과 공간을 매개로 사회운동을 하는 주체들의 논의를 구별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운동주체와 공간운영자들의 역할은 별도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한쪽의 논리가 다른 쪽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 때문이죠. 둘째는 구성원 모두 이 공간에 대한 사용권은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무조건 공간은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을 컨테이너와 천막으로만 구성한 것도 언제든 철거하고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퇴거명령 대항해 대안적 도시모델 추진
경의선공유지는 그동안 자본과 행정 관료에 의해 계획되고 운영되어온 국공유지 활용방식에 대항해 시민들을 중심으로 공공적 가치를 회복하고 실험하며 실천적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행정의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평당 수천만원의 금싸라기 땅에 눌러앉은 무단점유자들일 뿐이었다. 실제로 철도시설공단 측은 작년부터 자진퇴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다가 최근에는 9월 30일까지 떠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의선공유지 측은 “이 귀한 국공유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철도공단 아니냐. 오히려 시민들은 이곳을 활용해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철도공단에 손해를 끼친 것도 없다”며 “게다가 사업자가 사업계획을 낸 것도 아니고 서울시에 관련 도시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는데 무슨 근거로 퇴거명령을 내리는 건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정절차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에 대한 대안계획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올해 2월 경의선공유지에서 열린 협치서울 정책토론회에서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이곳을 도시재생의 새로운 사례로 만들기 위한 ‘공유지 기반형 도시재생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교수단체인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가 운영하는 ‘연구자의 집’과 경의선 숲길을 시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도시커먼즈 센터 등을 설치해 이곳을 지식, 공유, 시민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커먼즈 운동 통해 새로운 상상력 시도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작년부터 스스로의 활동을 ‘커먼즈 운동’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김상철 정책팀장은 “기존의 언어로는 경의선공유지가 활동해온 경험들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있었다”며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고민과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커먼즈라는 개념을 알게 됐고 이것이 우리 활동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용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24일 경의선공유지 두돌을 맞아 '26번째 자치구'의 구청장을 뽑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김 정책팀장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공공장소(Public Space)가 ‘모두에게 열려있다(Open to)’는 뜻이라면 커먼즈는 ‘모두에게 속해있다(Belong to)’는 개념이다. 즉 단순히 법과 제도로 규정될 수 없는 그곳에 속한 사람들이 느끼는 일종의 공통감각으로 볼 수 있다. 

김상철 정책팀장은 “그동안의 사회운동은 일종의 권리찾기 즉 인정투쟁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딱히 누군가에게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할 필요도 없고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커먼즈운동은 기존의 마을만들기운동과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빈 공간에서 자립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마을만들기라면 커먼즈운동은 행정과의 지속적 갈등관계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이후 대안적 도시재생계획이 시행되더라도 별도의 조직으로 남아 내부에서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기사보기:  ①커먼즈 운동의 확산과 고양시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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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운동, 전통적 방식의 '도시 내 권리찾기' 투쟁과 달라”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정책팀장을 맡고 있는 김상철 활동가<사진>. 시민시장 ‘늘장’운영 시절부터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던 그는 이곳 경의선공유지를 점유하는 ‘스콰팅’을 맨 처음 제안한 인물이다. 지난 3월 경의선공유지 두 돌을 맞아 진행된 일종의 퍼포먼스인 ‘26번째 자치구’ 구청장선거에서 김상철 정책팀장은 총 35표 중 18표를 받아 초대구청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26번째 자치구’라는 이름을 붙인 계기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이곳이 도시의 다양한 문제로 인해 쫓겨온 난민들이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쫓겨난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행정에 읍소하거나 애원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해보자는 것이다. 당연히 시민들에게 그런 권리가 있지 않겠나. 일종의 서울 내에서의 독립선언으로서 ‘자치구 선언’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서울 한복판에서 공유지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초창기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찾아와서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누구 허락받고 이곳에 있느냐, 지저분한 것들 좀 치워라.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우리는 이곳에 서울시나 마포구의 허락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원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유지는 시민 모두를 위한 공간이니까. 항의하러 오신 주민 분들에게도 이곳을 사용하고 싶으면 같이 이용하시라고 권유한다.
또 하나는 우리 나름대로 비용을 내면서 이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관리하고 전기료와 수도요금도 모두 공유지 구성원들이 내고 있다. 그리고 26번째 자치구 구민들이 매달 내는 주민세로 이곳이 운영되기 때문에 우리는 행정에 도움을 받는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곳이 도시공원이라면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민 혹은 누구라도 이 공간을 활용하고 싶으면 똑같은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이견이 있다면 언제든 토론하자고 이야기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이 어땠나.
마포구청에 민원을 계속 넣었다(웃음). 구청직원이 계속 와서 툴툴대기에 아니 마포구청이 이 공간에 무슨 권한이 있느냐. 여긴 철도부지이고 철도시설공단 관할이다. 이런 식으로 항의했다. 물론 민원 중에 쓰레기가 방치됐다거나 지저분하다거나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바로 반영해서 치우기도 한다. 다만 이곳(경의선공유지)은 인근 주민들만의 것도 아니고 마포구청의 말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곳도 아니라는 일종의 긴장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행정입장에서도 이곳이 눈엣가시일 것 같다.
그전부터 자진퇴거요청은 계속 날아왔다. 최근에는 철도시설공단이 마포구청을 통해 8월 30일까지 나가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공문도 보냈다. 우리가 무단점유상태인 것은 맞지만 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 여긴 비어있는 땅이고 아직 사업계획조차 없는 곳이다. 오히려 시민들이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만들어내는 가치가 훨씬 크다고 자신한다.
한번은 이곳 관리책임자인 철도시설공단 수도권본부장이라는 분이 이곳에 와서 왜 하필 여기에 있느냐. 여기가 평당 몇 천만원짜리 땅인데 이렇게 깔고 앉아 있느냐고 한숨을 쉬더라. 하지만 평당 얼마가 됐건 이곳은 국공유지이고 시민들 재산 아닌가. 게다가 이렇게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공유지일수록 더더욱 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의 제재에 대한 경의선공유지의 대응방향은 무엇인가.
작년 말부터 단순히 점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대안계획을 만들어가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그 중 하나의 전략이 공공기관을 계속 엮는 방식이다. 서울시 협치포럼을 경의선공유지에서 개최하기도 했고 11일부터는 서울시npo센터와 국제컨퍼런스도 준비 중이다. 이런 식으로 권위 있는 외부행사를 유치하는 것은 우리 활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다. 
올해 초부터 ‘공유지 기반형 도시재생모델’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너희들의 대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성도 있고 그간 행정에서 일괄적으로 모델링해 내려 보내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재생의 사례를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진행 중이다.

커먼즈 운동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동안 몸담아왔던 사회운동은 주로 도시 내에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일종의 ‘인정투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딱히 누군가에게 내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할 만한 대상이 없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권리를 만들어내고 서로가 존중해주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존의 도시 내 권리 찾기 운동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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