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십 년 넘게 도시에서 텃밭을 일구면서 이 농장 저 농장 참 많이도 떠돌아다녔다.

텃밭을 일구는 이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농사짓던 땅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는 땅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 깊은 속정이 쌓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정든 땅을 떠나는 건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만큼이나 아플 수밖에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스스로 떠난다면 모를까 땅 주인과 갈등이 생겨서 농장을 떠날 땐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다. 유기농을 하는 이들은 땅 주인과 마찰을 빚을 때가 왕왕 있다. 대부분의 땅 주인들은 텃밭에 풀이 자라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텃밭에 풀 한 포기 없어야 농사를 잘 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나 역시 두 번이나 농장을 옮겼다. 어떤 땅 주인은 멀쩡하게 돈 주고 빌린 남의 텃밭에 허락도 없이 제초제를 뿌리기까지 했다. 그럼 그 즉시 안녕이다.

집 없는 서러움 못지않게 땅 없는 서러움도 크다. 농장을 여러 차례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땅에서 농사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그러나 두메산골에나 들어가면 모를까 도심에서 내 땅을 장만한다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농사를 짓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농장에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농장도 개발예정지구 안에 있는 탓에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한 신세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 땅을 사야만 편안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것일까. 땅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가 내 땅이다 생각하면서 흙을 일구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서 시유지나 국유지에 시민농장을 만들면 된다. 그러면 자기 땅이 없더라도 누구나 맘 편히 농사지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단순히 개개인의 취미 생활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농업이 발전하면 청년들의 실업 문제나 노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환경보호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를 세계 시민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고, 식량 대란의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다.

땅을 소유나 개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면 땅의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커진다. 땅은 그 자체로 마을이 되고, 학교가 되고, 숲이 될 수 있다.

난 가끔씩 여기저기 시민농장이 생겨서 그 안에 농사와 요리와 목공과 생태와 인문학 학교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상상해보곤 한다. 그곳에선 누구나 교사가 되고 학생이 될 수 있다. 마을이 학교이고, 학교가 마을이기 때문이다.

난 그러한 상상이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얼마든지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미루지 말고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농부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건축가가 되고, 예술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고, 환경 지킴이가 됨과 동시에 서로에게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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