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안녕, 미누’

다국적 이주노동자 밴드 리더의 추방과 재회
이주노동과 연대에 대한 뜨겁고도 강렬한 이야기
개막작으로 첫 상영,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받아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안녕, 미누'의 한 장면.


[고양신문] 영화제 개막작품은 영화제 전체의 지향과 색깔을 담보해야 하고, 관객들에게는 영화제의 첫인상을 결정해주기 때문에 무척 신중한 절차를 거쳐 선정되게 마련. 그런 면에서 창작자에게는 더없는 영광이기도 하다.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선택은 지혜원 감독의 ‘안녕, 미누’다. 50만 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춘을 이국 땅에서 바친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국경을 넘는 연대와 우정으로 희망의 길을 열어가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평화·소통·생명’의 가치를 표방한 영화제의 지향점을 보여주기에 부족함 없어 보인다.

지난 13일 개막식에서 첫선을 보인 ‘안녕, 미누’는 개봉 전부터 수많은 뒷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궁금증을 자아냈었다. 작품은 기대감을 훌쩍 상회하는 감동과 재미를 던져줬다. 개막식장의 분위기는 대개의 다큐멘터리는 조용하고 진지하게 관람한다는 선입견을 가볍게 날려줬다. 관객들은 마치 화면 속 미누와 마주하듯 상영 내내 그의 이야기에 탄식과 웃음을 번갈아 내뱉었고, 하이라이트 공연 장면에서는 영상 속 공연장 관객이 돼 커다란 박수를 터뜨리기도 했다. 영상에 등장하는 주인공 미누와 그의 ‘다국적’ 친구들이 객석에 함께 자리를 해 반가움과 감동의 무게를 보탰다.
 

대한민국, 밉고도 그리운 나라

영화는 미누라는 네팔 사람 중년 남자가 고향의 강물에 띄운 조각배 위에서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자리를 찾아 20살에 한국에 들어와 18년을 살았지만, 7년 전 불법체류자로 추방돼 네팔로 돌아온 후 늘 한국 땅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지낸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그가 추방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노동자로, 그리고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 성격 좋고 부지런한 미누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았지만, 2000년대 후반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대대적 추방이 진행되는 모습을 목격하며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부르짖는 밴드 ‘스탑크랙다운(강제추방을 멈춰라)’을 결성한다.

네팔 출신의 미누를 비롯해 미얀마, 베트남, 그리고 한국 청년까지 다국적 노동자로 구성된 스탑크랙다운은 이주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자리를 찾아다니며 ‘월급날’, ‘손무덤’ 등 흥겨우면서도 호소력 높은 노래들을 부른다.

그러나 불법체류자 강제 추방의 공포는 결국 미누에게도 찾아온다. 고국인 네팔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펼치며 사회적 기업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미누는 한국을 잊지 못해 향수병에 시달린다. 미누는 이런 자신을 “엄마에게 쫓겨난 가출 청소년이 여전히 집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런 미누에게 8년 만에 한국방문의 기회가 찾아온다. 서울에서 열리는 핸드메이드 박람회에 네팔의 공예품을 가지고 참가할 기회를 얻은 것. 한국땅을 밟을 생각에 미누는 가슴이 부푼다. 그러나 미누는 인천공항의 입국심사대를 결국 통과하지 못하고, 몇 시간 만에 다시 네팔로 내쫓긴다. 인권운동을 했던 전력이 그의 입국금지 기간을 10년으로 늘려놓았던 것이다.

또 한번 크게 좌절한 미누는 영영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까. 이번엔 한국에 남아 있는 밴드 멤버들이 일을 꾸민다. 미누가 못 온다면, 우리가 미누를 찾아가리라.

그렇게 ‘스탑크랙다운’ 멤버들은 몇 년 동안 놓았던 기타를 다시 챙겨들고 네팔을 찾아 미누와 함께 꿈의 공연을 펼치기로 의기투합한다. 과연 기적 같은 공연은 열릴 수 있을까? 영화는 다큐멘터리지만 마치 극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와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차곡차곡 고조시킨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영화 속 미누와 친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국이 있지만, 한국인이기도 한’ 이중적 존재로 고백한다. 청춘의 대부분을 보내며 수많은 경험과 인연을 선물해 준 한국이 어떻게 남의 나라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법과 정책 아래에서 그들은 어디까지나 연약한 ‘이주노동자’일 뿐이다. 미누가 추방되던 날에도 어딘가에서 공연을 하던 멤버들은 청천벽력의 소식을 접하고 이 땅에 대한 숨겨뒀던 속내를 표출하기도 한다.

“날 잡아 전통의상 한번 입히고, 고향음식 한번 먹게 하면 그게 다문화인가요? 한국이 말하는 공존은 그런 건가요?”

이처럼 영화는 이 땅의 한 구석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살이 넘으면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만 하는 가난한 나라의 현실을 네팔에서 사회적 활동가로 성장한 미누의 일상을 빌려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과의 이별, 단절된 세상으로 나가는 두려움, 자살률의 증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의 우울과 트라우마를 다큐멘터리 특유의 냉정한 시선으로 스케치한다.

 

국적과 시간을 뛰어넘는 감동의 코드

영화에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코드가 몇 가지 등장한다.

우선 빨간 고무가 코팅된 목장갑. 미누는 한국에서 밴드로 활동할 때부터 빨간 목장갑을 트레이드마크처럼 끼고 마이크를 잡았다. 목장갑은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상징성을 품고 미누와 동료들의 메시지를 대변했다. 고향에 추방돼서도 미누는 목장갑 한 켤레를 액자 속에 넣어 벽에 걸어둔다. 그리고 마침내 친구들과의 8년 만의 재회 공연을 앞두고 액자 속 목장갑을 꺼내 손가락 부분을 싹둑싹둑 잘라 더욱 스타일리시하고 강렬한 ‘핑거 글러브’를 만든다. 한 켤레의 목장갑은 무척 강력한 이미지의 자장을 관객들에게 남긴다.

다음으로 커피. 미누는 커피 불모지인 네팔에서 한국의 공정무역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바리스타 스쿨을 열고, 영화 말미에는 커피전문점을 직접 오픈한다. 네팔을 찾은 친구들에게 건네는 근사한 카라멜 마끼야또 한 잔은 한국에서의 경험과 인연을 아낌 없이 고향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자 하는 미누의 간절함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한 ‘목포의 눈물’. 미누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국에서 날아 올 친구들을 기다리며 반주기 연주에 맞춰 이 노래를 홀로 다시 부른다. 한국에서 식당에서 일할 때 전라도 출신의 아주머니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를, 수십 년 후 자신이 고향 네팔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부르게 될 줄을 미누도 몰랐으리라.

한국 사람보다 더 구성지게 노래의 진맛을 살려 부르는 미누의 노랫가락을 듣다 보면, 삶의 애절함을 어루만지는 감성은 결국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모든 이에게 일맥상통의 공감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감성을 담아내는 그릇은 노래이기도 하고, 글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필름이기도 하다.

‘안녕, 미누’를 만든 지혜원 감독은 20년간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활동했다. KBS 다큐 공감에서 방영된 ‘엄마와 클라리넷’(2015)이 국제방송제에서 수상을 하며 주목을 받았고, 첫 장편 다큐멘터리 ‘바나나쏭의 기적’(2016)은 암스테르담과 셰필드 등 세계 25곳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찬사를 받았다.
 

'안녕, 미누'를 감독한 지혜원 감독.

 

‘안녕, 미누’ 상영 일시

9월 15일 오후 3시 30분 / 고양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 6관
9월 18일 오후 4시 / 고양 메가박스 백석 7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