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고양포럼 - 김영호 전 산자부 장관>


[고양신문] 제70회 고양포럼이 지난 17일 일산동구청에서 개최됐다. 고양파주흥사단이 주관한 이번 고양포럼에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깊이 연구하며 다양한 나라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는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초대했다. 김영호 전 장관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다.

 

= 이번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의 키워드가 ‘평화, 새로운 미래’다. 나는 이 키워드를 ‘평화, 오래된 미래’라고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100년 전인 1910년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평화’는 100년 전 오래된 우리의 염원이었던 것이다. 사형집행으로 비록 미완성 원고로 남아 있지만 ‘동양평화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민족을 초월한 평화의 염원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동양평화론의 내용은 이렇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던 것은 ‘동양평화’라는 일본의 전쟁 명분을 한국과 청국이 믿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평화는 일본이 만주와 청국에 야욕을 가졌기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동양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국권을 돌려주고 만주와 청국에 대한 침략야욕을 버려야 했다. 동양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서구세력을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일지라도 아는 바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일본은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는가. 백인세력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동양 3개 국이 힘을 합쳐야 하며 이를 위해 동양평화회의를 뤼순에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안중근 의사가 제안한 한‧중‧일 평화체제 구상론은 유럽연합(EU)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제안된 것이다. 동양평화회의 아래 공동의 군대를 유지해 안보를 도모하고, 같은 경제권으로 경제개발을 도모하자는 안중근 의사의 주장은 EU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모네를 떠오르게 한다.
 


안중근의 위대한 점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즉 민족을 초월해서 ‘동양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동양평화를 위해 싸웠다. 일본이 동양평화에 선두에 서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아시아를 통합시킬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달라.’ 내가 중국의 거장 장예모 감독에게 안중근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은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경제 강국이라 할지라도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면 아시아의 중심국가라는 평가를 절대 받지 못할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휴머니즘 운동이다. 그 독려 역할을 한국과 중국이 해야 한다. 이러한 독려를 오히려 일본은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동양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것이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이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한일병합조약이 국제법으로 정당했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질 수 있는가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도 미국은 일본의 태평양전쟁만을 문제 삼았을 뿐 식민지 문제는 탓하지 않았다. 미국은 그 전에 이미 일본의 식민지를 인정했었다. 이처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가 국제법상 합당하다면, 혁명이라 불릴 수도 있는 3‧1운동도 하나의 소요사태에 불과하고 안중근 의사도 범법자가 되고 만다. 100주년 기념사업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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