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불곰에게 잡혀 간 우리 아빠』

『불곰에게 잡혀 간 우리 아빠』(허은미 글, 김진화 그림, 여유당)

 

[고양신문] “차례상에 전 부치지 마세요”
올 추석을 앞두고 나온 기사 제목이다. 전통적인 유교식 차례상에는 기름진 음식은 올리지 않는 것이라며, 간소한 상차림을 권하는 내용이다. 여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추석 노동’이 ‘전부치기’라고 전제한 뒤 간단한 차례 상차림으로 조상에게 예를 갖춘다면 명절증후군이나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차례상 간소화’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절증후군이나 갈등이 사라질까? 이제 ‘차례상에 전을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전은 누가 부쳐야 하나?’를 말하고 더 나아가 ‘왜 남성 조상 쪽 차례만 지내는가?’ 말해야하지 않을까? 아직은 너무 이른 때라고? 그럼 도대체 어느 때가 적당한 때란 말인가.

그림책 『불곰에게 잡혀 간 우리 아빠』(허은미 글, 김진화 그림, 여유당)에는 학교 시 쓰기 시간에 ‘엄마가 좋은 이유’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아이가 나온다. 아빠는 엄마가 ‘튼튼해서 좋다’면서 사실 엄마는 불곰이었다고 말한다. 아빠가 산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타나 구해준 불곰이 고마워서 결혼을 한 거라나? 하긴 엄마는 하루 종일 탁자에 서 있고, 다리가 붓고, 점점 뚱뚱해지고, 하루 종일 큰소리로 말하고, 한밤중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고, 아침이면 점점 얼굴이 커지면서 소리 지르곤 한다. “어서 일어나지 못해!” 목소리는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런 불곰이 좋은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사진첩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이 아기 누구예요?” “누군 누구야. 네 엄마지.” “이 사람은요?” “그것도 네 엄마지.” “와, 엄마가 이렇게 예쁠 때가 있었어요?” “네 엄마, 지금은 저래도 젊었을 땐 얼마나 고왔는지 몰라. 웃기도 잘 웃고.” 아이의 시선은 자기와 꼭 닮은 어릴 적 엄마 사진에 머문다. 오랫동안 엄마 사진을 보 고 또 본 다(책 본문 띄어쓰기를 그대로 옮겼음).

왜 예쁘고 잘 웃던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불곰이 되는 걸까? ‘여성의 삶이란 원래 그런 거야.’ 하고 생각하는 사이 우리 엄마도, 우리도 어느새 으르렁거리는 불곰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평소 그렇게 으르렁거리던 불곰은 명절 때가 되면 조용해진다.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일만 한다. 내내 일만 하다 명절이 지나면 더 으르렁거린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불곰이 되는 것쯤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주변에서는 으레 그런 거라고 말한다. 언젠간 세상도 변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 한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유형의 방과 돈이 아니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국 사회는 울프가 이 말을 할 때쯤이 되어서야 여성이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을 가질 수 있고, 투표를 할 권리가 생겼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 불곰이 되는 삶을 받아들여야 하고, 명절이 되면 아무 말 못하고 남성의 조상에게 차례를 올려야 한다. 몇 년이 더 지나야 하는 걸까?

책 마무리에 아이는 시를 고쳐 쓴다. ‘엄마는 좋다. 아빠를 구해주고 나를 낳아줘서 좋다. 참 좋다.’ 아이가 엄마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되어 다행이다. 하지만, 한 줄 보태어 ‘이 아이는 자라서 또 불곰이 될 것이다.’ 라고 끝내면 어떨까?

박미숙 (책과도서관 대표 /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이제 불곰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아니 자기만의 방은 불곰이 되기 전부터 필요하다. 그 방은 불곰 혼자서는 만들 수 없고, 가족들만 합의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온 세상이 나서야 한다. 추석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 때다. 누군가의 주장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한 때다. 이렇게 또 100년이 지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오늘도 우리 딸들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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