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 이론가 미셸 보웬스 초청강연

[고양신문]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커먼즈(Commons)운동. 최근 한국에서도 투기적 도시개발에 맞서 ‘도시에 대한 모든 이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 중 하나로 도시 커먼즈 운동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몇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커먼즈란 무엇인가. 기존의 사회운동과 무엇이 다르며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아가 커먼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일 서울 공덕역 인근에 위치한 경의선공유지에서 해외 커먼즈 전문가인 P2P재단 창립자 미셸 보웬스<사진>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도시공유(The urban commons) 이행의 경험과 함의’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자리에서 미셸은 벨기에 겐트시에서 추진했던 ‘커먼즈 도시 전환 계획’의 경험을 중심으로 강연을 이어갔다. 

미셸에 따르면 토지, 물, 숲과 같은 커먼즈는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규칙을 정하고 자원을 함께 관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공동자원들에 대한 접근이 점차 힘들어지자 도시 내에서 시민 스스로 커먼즈를 창출하는 과정들이 이어졌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커먼즈 운동은 기존의 NGO단체와는 다른 접근법을 나타낸다. 미셸은 “전통적인 NGO들이 자원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접근한다면 커먼즈 운동은 풍요를 바탕으로 접근하며 사람들이 공유하고 협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NGO가 회원중심, 위계중심이라면 커먼즈는 누가 허락하지 않아도 참여해 기여할 수 있는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시장 내에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조직과 생성적이고 윤리적인 관계를 맺는 데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미셸은 말했다. 

미셸은 커먼즈 전환계획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겐트시에서 활동하는 8명의 커머너(Commoner)들을 인터뷰하는 한편 도시 내 의식주와 교통 등 인간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조사 등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시 차원의 공적인 커먼즈 기업을 만들 것과 시의 공공서비스를 공유재화 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커먼즈를 인클로저 방식으로 파괴해왔으며 이로 인해 현재 법적으로 남아있는 커먼즈는 대부분 사라지고 공공과 민간영역만 남게 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개인화, 원자화 되어갔고 시장의 교환관계에만 내몰리게 됐다. 오늘날 텃밭을 가꾸거나 빗물을 받아 공공용수로 이용하는 등의 행위는 법적인 제약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미셸은 크게 3가지의 제안사항을 겐트시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시 정부와 시민 간의 커먼즈 협약 도입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통과된 도시 커먼즈의 관리발전을 위한 조례의 경우 어떤 시민이든 특정한 공통자원에 대해서 커먼즈 운동을 시작할 수 있고 이를 공공기관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미셸은 “이러한 협약을 통해 커먼즈 운동이 공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제안이유를 설명했다.  

두 번째는 시 정부가 커먼즈에 대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셸은 “겐트시에는 커먼즈와 관련해 시정부, 기업단체, 대학, NGO 등 여러 주체들이 있었다. 이들이 함께 연계해 재정적, 물리적, 인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시의 역할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제안은 기여적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것. 미셸은 “대의민주주의는 과거만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참여민주주의 또한 참여주체가 고정화되거나 하향식으로 이뤄지는 등 불완전한 부분이 많다”며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민주적연합체가 있다면 의사결정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미셸은 “지금의 자본주의는 자연을 파괴하고 추출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향후 20년 정도가 지나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커먼즈는 생성적 경제활동을 지향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선을 위한 경제’ 운동을 예로 들며 “벨기에의 한 도시에서는 공동선에 관한 17개의 지표를 마련해 이를 바탕으로 기업활동을 평가하며 이를 통해 도시정부의 세금정책과 보조금지급에도 반영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미셸은 “공공 아니면 민간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커먼즈와의 삼위일체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에게는 커먼즈가 필요하고 커먼즈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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