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맞춤법 좀 틀리면 어때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한 번 써 보자고 마음을 먹은 건 월간 작은책을 보고나서 부터였다. 언젠가 오전반 일을 끝내고 집에서 한겨레 신문을 훑어보다가 작지만 눈에 띄는 조그만 광고를 보았다. 작은책이 창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똑 중학생들 버스표 한장을 잘라 위 아래로 붙여 놓은 크기 만한 광고였다.

‘일하는 사람들의 글모음’이라고 써 있었고 1년 구독료 만 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정말 노동하는 사람들이 쓴 책인가 긴가민가했던 그 책은 진짜로 우리들 노동자가 쓴 글이 실려 있었고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 박영숙씨가 살아온 이야기는 너무 힘들게 살아온 것 같아 안타까웠고,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재관씨가 연재한 ‘노동자 글쓰기 어떻게 할까’는 뭔가 할 말은 많은데 쓰는 것이 엄두가 않나 그냥 읽기만 하던 나에게 ‘쓰고 싶다’는 용기를 갖게 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만 가지고도 글쓰기는 시작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것보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못하게 만드는 건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아닐까. 거기다 그놈의 원고지 소리만 나오면 주눅이 든다.

원고지는 왜 만들었을까. 띄어쓰기를 확실히 하고 글자가 몇 개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게 만든 건 아닌가. 띄어쓰기가 조금 틀리면 어때. 우리가 무슨 논문 쓰는 것도 아니고 일기나 편지, 생활글쓰기 정도인데 띄어쓰기 조금 틀리다고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글자 수 같은 거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편집하기 쉽게 하거나 만들 책 쪽수를 재기 위한 것은 아닌가. 단순히 그런 까닭 밖에 없다면 앞으로는 노동자들 글을 모은다고 할 때 200자 원고지 몇 장이니 하는 소리는 없었으면 좋겠다. 200자 원고지 소리만 나오면 ‘아, 기 죽어’.

얘기가 옆길로 샜지만 어쨌든 나도 '살아온 이야기'를 원고지는 아니고 아무 데나 한번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며칠간 옛날을 돌이켜 보았지만 뚜렷하게 내세울 게 없었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었다. 조금 생활이 어려웠지만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만큼 어렵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 신세 타령이나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된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말이 없었고 웃지도 않았고 굉장히 무서웠다. 성격이 불 같아 한 번 말해서 안되면 두번째는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매를 잘 들지는 않았지만 한 번 들기만 하면 발가벗기고 혁대로 때렸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은 무척 궁금했지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커서 몇 번 물어 봤지만 전혀 말을 안 했다. 특히 6·25때는 어디서 보냈는지 제일 궁금했다.
아버지는 황해도 연백이라는 곳에서 나셨다 한다. 키가 무척 작았지만 젊었을 적엔 단단한 몸매를 가졌다. 처음 결혼한 부인 사이에 아들 하나를 낳고 부인은 죽고 어떻게 하다 충남으로 내려와서 지금 살아계신 우리 어머니를 만났다 한다.

어머니 말씀은 그때 아버지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하고 중매를 선 사촌언니가 총각이라고 속여서 그런 줄만 알고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뒤 고모부가 교감으로 있는 마포에 있는 동도고등학교 수위로 왔고 집도 학교 안에 있어서 거기서 살았다. 고모부는 학교 안에 대원군 별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아버지는 그때가 가장 편하게 지내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는 내 기억으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으니까.
<버스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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