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가 지나자 농장에 주차해두었던 차창에 성에가 끼었다. 오싹 끼치는 한기에 아무 생각 없이 얇은 점퍼 하나 걸치고 나온 게 후회가 된다. 아낌없이 열매를 내어주던 채소들도 오돌오돌 떨며 잎사귀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작물 하나 없이 텅 비어서 황량할 겨울 텃밭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어른하다.

씨감자를 심은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난 계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다. 특히 숨이 턱턱 막혔던 한여름 폭염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사십 도에 가까운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농장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고, 나 역시도 오전 열 시가 넘으면 탈출하다시피 허겁지겁 농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한여름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일 밭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일을 했었다. 그래도 그다지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올여름 폭염에는 해가 하늘에 걸리기만 하면 밭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가 물러가길 기다리며 하냥 손을 놓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가족 먹으려고 심어놓은 채소들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백 평 농사를 지어놓은 울금 밭은 생계와 직결되어있는 탓에 폭염이 아니라 폭염 할아버지가 와도 들여다봐야만 했다. 울금 밭만 생각하면 전날 아무리 과음을 해도 새벽같이 번쩍번쩍 눈이 떠졌고 나는 눈을 뜨자마자 보온병에 얼음물을 챙겨서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다. 해가 채 뜨기 전인데도 승용차의 온도계는 삼십 도를 웃돌았고,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시작할라치면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울금을 돌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지열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땡볕을 견디며 일을 하다 보면 이내 어지럼증이 일었고, 난 농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삼십 분마다 그늘 밑으로 대피를 했다. 그러나 오전 열 시만 넘기면 텃밭으로 들어가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아무도 없는 농장에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등 떠밀려 나는 그 길로 집으로 내빼 큰대자로 뻗었다. 그리곤 오후 다섯 시까지 에어컨 아래서 체력을 비축한 뒤 다시 밭으로 나가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을 했다.

덕분에 울금은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람 키만큼 자라서 커다란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울금을 바라보면 지난 여름의 고생스러움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문득 시골에서 농사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벗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도심에서 삼백 평 남짓한 농사를 짓는 내가 겪은 고생이 이러할진대 시골에서 홀로 몇천 평 농사를 짓는 벗들이 겪었을 고생은 상상만으로도 아뜩하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미안하다.

그들이 올여름 살인적인 폭염을 견디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은 어찌 됐을까. 꼭 농부가 아니더라도 남들이 시원한 사무실 안에서 일을 할 때 불화살 같은 햇볕을 온몸으로 견디며 뛰어다닌 수많은 이들의 땀방울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난 수확을 앞둔 이 계절에 우리 모두가 지난여름을 몸으로 견뎌낸 이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박수를 쳐주었으면 좋겠다. 감사함을 아는 건 우리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미덕이며 우리가 그 미덕을 저버리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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