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조선독립운동가를 변호한 ‘후세 다쓰지’

[고양신문] 일전에 문경의 박열박물관을 간 적 있었다. 작년에 ‘박열’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어 새롭게 관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일본친구 이치노헤 쇼코가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열렬히 존경하는 사람이어서 나도 일부러 마음을 내서 가보게 되었다.

박열은 천황을 암살하려는 혐의로 투옥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수로 감형되었다가 해방직후 22년 만에 출소하게 되었다. 이때 박열을 변호했던 변호사가 있었다.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이다. 당시 일본 천왕 암살자를 변호한다는 것은 일본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협박과 살해위협을 받는 일이다. 그는 1919년 2·8독립선언의 주역인 최팔용, 소계백 등 조선청년독립단의 변호도 맡았고, 1924년 동경에서 열린 국제의회에 의열단으로 참석한 일본총리와 조선총독을 폭살하려던 이중교 투탄의거 사건의 김지섭 의사를 변호했고, 역시 의열단원 김시현을 비롯한 조선독립운동가들을 무료 변론한 사람이다.

그는 이처럼 조선독립운동을 지원했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2년 징역형을 받은 적도 있다. 심지어 조선을 돕기 위해 해방이후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저술하기까지 했다. 그 공로로 2004년 일본인 최초로 우리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안중근을 숭모해 온 간수 ‘치바 도시치’

일본 미야기현에 대림사라는 절에는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셔놓고 매년 추모행사를 하는 일본인들이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중국의 뤼순(旅順)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그 감옥의 간수로 복무한 일본헌병이 바로 ‘치바 도시치(千葉十七)’였다. 그런데 감옥에서 항상 겸손하고 단정한 안중근의 인품에 감동하여 숭모하게 되었고, 안중근으로부터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유묵을 받고 11년 뒤에 자신의 고양 미야기현에 돌아와 집의 불단에 안중근 의사의 위패와 사진, 유묵을 모셔놓고 항상 불공을 드렸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는 조동종 사찰인 대림사(大林寺)에도 위패를 모셨다.

그가 죽은 뒤 부인 아오키상과 손자 지바 세이치도 역시 불공드리는 일을 계속했다. 당시 미야기현 대림사의 주지인 ‘사이토 다이켄’도 치바와 그 부인에게 오랫동안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근처 ‘구리하라’에 기념비와 기념관을 세웠고 매일 불공을 드려왔다. 결국 사이토 스님은 안중근 의사와 간수 치바를 존경하여 ‘내마음속의 안중근 - 치바 도시치의 생애’라는 책을 냈고 10년 넘게 살해위협을 당하기도 했지만 매년 안중근을 숭모하는 일본인들을 모아 추모제를 열고 있다.


조선침략참회기를 쓴 ‘이치노헤 쇼코’ 

아오모리 운쇼지(雲祥寺) 주지스님인 이치노헤 쇼코(一戶彰晃)는 재일조선인과 부락민 등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재생초를 만들어 팔며 인권, 평화, 환경관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불교 조동종이 아시아침략 당시에 앞잡이 역할을 했던 선무공작의 기록을 낱낱이 밝히는 『조동종의 전쟁』이라는 책을 썼고, 이어 한국에서 어떠한 못된 공작을 했는지를 상세히 기록하여 동국대 출판사에서 『조선침략참회기』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또한 아시아침략을 참여한 조동종의 행위를 1992년 공식적으로 참회한 ‘참회와 사죄의 글’을 한국의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東國寺)에 일본인들로부터 모금을 하여 비석을 세웠고 그 옆에 정신대소녀상을 세웠다. 이 일은 당연히 일본에 알려졌고 엄청난 뉴스가 되었고 우파들의 비난과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재야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일본에 빼앗긴 각종 한국의 유물을 구입해 동국사와 군산박물관에 보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과는 상대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며칠 전 1998년 10월 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채택한 공동선언 20주년 행사가 동경에서 있었다. 20년 전 이 공동선언은 한일 간의 가장 전향적인 선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합의한 뒤에 실제 왕성한 문화교류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베는 이 역사의 시계를 다시 돌려놓았다. 몇 년 전 아베와 박근혜는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정신대 문제를 일방적으로 합의해 국민적인 저항을 받았다.

우리는 일본에게 식민지배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편 일본의 우익들은 대체 언제까지 자기들이 사과를 해야하는가라고 반발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번에 한국에 온 지한파 총리였던 하토야마는 “사과란 상대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가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반복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행동으로 신뢰를 확인시켜야 사과가 완성된다고 한다.


일본의 양심세력과 한국의 양심세력

과거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지원했고,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지원했으며, 전쟁을 일으킨 자기나라를 비판하면서 대신 사과하고 참회한 수많은 일본의 양심들이 있다. 그들이 일본 우익들의 살해위협과 겁박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럴 때마다 나는 베트남을 생각한다. 우리는 받은 피해의 상처를 잊지 못해서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 우리자신이 입힌 가해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돈 벌기 위해 미국의 용병으로 파병되어 이해관계도 없이 수많은 베트남 국민들을 살해했으면서, 일본의 양심들처럼 우리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참회하고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사과의 목소리, 양심의 소리는 왜 크게 보이지 않을까.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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