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초보농부는 풀을 키우고, 일반농부는 작물을 키우고, 진짜농부는 땅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 고양시에 와서 처음으로 농사를 배운 서울 촌놈은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했다. 첫해는 정말로 자라나는 풀 때문에 작물을 거의 거두지 못했다. 이삼 년이 지나서야 작물다운 작물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작물을 잘 키우려면 땅이 튼튼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트랙터로 땅을 뒤집고, 비닐을 씌우고, 화학농약을 뿌리면 겉보기에 작물은 잘 자란다. 화학농법의 힘이다. 그러나 그렇게 화학농법을 고집하다가는 땅을 죽이고 만다. 땅이 죽으면 작물도 죽는다. 풀과 벌레와 함께하는 유기생태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비록 얼치기 농부지만 진짜농부를 닮고 싶어 10년 넘게 비닐멀칭 없이 화학비료, 화학농약 없는 삼무(三無)농법으로 땅을 살리고 작물을 키워왔다.

가난하여 송곳 꽂을 땅도 없어, 텃밭주인에게 땅을 임대하고 자유농장이라 이름 짓고 농사를 지은 지 4년차, 풀과 벌레와 작물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농장의 모습이 땅주인은 마뜩치 않았나보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땅을 빼라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집 없는 사람에게 방 빼라는 말만큼 무서운 말이 없듯이, 농부에게 땅 빼라는 말은 청천벽력이다. 생태농장을 책임지고 운영하던 김한수 소설가는 연일 한숨이다. 가난한 농부의 설움이라기보다 잘 키워온 땅이 아쉬워서이다. 살아 숨 쉬는 땅이 다시 망가질까봐 더 걱정이다. 그 때알 구조의 보슬보슬하고 푹신푹신한 땅을 만들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땅이야 다시 다른 곳에서 빌릴 수 있겠지만 그 거친 황토밭을 기름진 옥토밭으로 만들려면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할까.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울 어머니 살아생전에 작은 땅이라도 있었으면, 콩도 심도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 투기꾼에게 땅은 투자와 재테크의 재산이지만, 도시농부에게 땅은 생명을 키우고 작물을 나누는 공동체의 터전이다. 애써 가꿔온 터전이 사라지고 말았다. 같이 농사짓던 공동체원들도 망연자실이다. 땅 없는 설움에 소주병만 쌓여간다.

그러다가 문득 고양시가 생명을 키우는 도시농부에게 안정적인 땅을 임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생태도시의 위상에 맞는 생태환경을 조성하면 얼마나 좋을까? 시멘트로 고층건물을 세우는 대신 고양시 곳곳에 생태텃밭을 조성하고, 고양시에서 소비하는 채소를 자급자족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지. 좀 더 생각을 키워봐야겠다. 호수공원에다가 남북토종씨앗박물관을 세우고, 외국 대기업의 종자 대신 우리 토종작물을 키우고 보급하면 좋겠구나. 생태작업장도 만들어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면, 함께 짓고 함께 나누는 마을 공동체원으로 성장할 수 있겠구나. 농장 주변에 땅을 밟고 놀 수 있는 생태놀이터도 만들고, 생태도서관도 조성해 잘 노는 농부, 책 읽는 농부로 키울 수 있겠구나. 땅을 소중하게 키우고 가꾸는 생태적 감수성을 어렸을 때부터 키운다면 생명존중과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겠구나.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수많은 도시농부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도 할 수 있겠구나. 실버농장을 만들면 어떨까? 양로원에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대신 생명을 가꾸고 함께 나누는 시민으로 변신하지 않을까? 삶의 의미와 보람을 몸으로 다시 찾지 않을까?

이런저런 허황된 꿈을 꾸다가, 혹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눈을 반짝이다가, 아니야 힘들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하다가, 그래도 시작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슴에 불씨를 키우다가, 그나저나 내년도에는 어디서 농사를 짓지 하는 현실적 문제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또 하루가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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