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 <사진=김윤용>

 

[고양신문] 쓰리쿠션 당구가 유행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쓰리쿠션 세계 대회를 후원하고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걸 보니 그렇습니다. 그만큼 당구 동호인들이 많이 늘어났고 관심 있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당구 치는 분들을 만나면 세계 4대 천왕이 누구누구이고, 프로 선수들도 초구 실수를 한다는 둥 당구 소식을 두루 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쓰리쿠션 대신에 4구 당구를 주로 쳤지요. 4구 당구는 두께와 방향, 큐질 따위를 기본으로 배운 뒤 30을 놓고 시작합니다. 50을 지나 80에 이르면 희한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당구 입문자들은 대개 같은 경험을 얘기하고 공감합니다. 식당 탁자가 당구대로 보이고, 그 위에 놓인 컵들을 당구알로 삼아 어떻게 칠 건가를 상상합니다. 심지어 방에 누우면 천장이 거대한 당구장으로 그려지는 환상이 나타납니다.

저도 나무를 그렇게 배웠습니다. 조금씩 나무 공부에 빠져들 때였습니다. 온통 나무만 생각했지요. 영상물을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그림을 볼 때도 나무가 주인공이나 배경으로 나오면 무슨 나무일까, 궁금해 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무가 휙 지나갈 때도 순식간에 지나간 그 나무가 뭘까, 궁리했으니까요.

마음속에 30만 평 호수공원 지도를 펼칩니다. 그 지도에 표시한 나무를 찾아 걷습니다. 20만 그루 나무를 모두 만날 수 없지만, 어느 곳에 있는 어떤 나무는 지금은 어찌 살고 있을까를 상상하는 재미가 솔찮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호수공원 나무들도 울긋불긋, 노란 단풍이 들었습니다. 걷다가 호수공원 잣나무를 봅니다. 잣죽과 잣막걸리가 생각나고, 말장난 같은 옛이야기가 떠올라 빙긋 웃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시골 장날, 꾀 많은 건달이 먹음직한 잣을 보았습니다. 고소한 잣을 보고 입맛을 다셨겠지요. 먹고는 싶지만 돈이 없는 건달은 궁리를 했습니다. 그러다 기막힌 방법을 찾아냅니다. 장사치 옷을 가리키며 “이게 뭣이오?”라고 묻습니다. 장사치는 “옷이오(오시오).”라고 했겠지요. 그런 뒤 잣을 가리키며 또 묻습니다. 장사치가 “잣이오(자시오).”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실컷 먹습니다. 실컷 먹은 건달은 결정타를 날리지요. 지나가는 사람이 쓴 갓을 가리키며 “저건 뭣이오?” 하니, 당연히 장사치는 “갓이오(가시오).” 하지 않겠어요. 건달은 그 말을 듣고 쏜살같이 가겠지요. 어이없는 장사치가 따지자 건달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이 먹으라 해서 먹었고 가라 해서 갔는데 뭐가 문제요?” 하고 말이지요.
 

잣 알갱이. <사진=김윤용>


잣나무는 나무 꼭대기인 우듬지에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가까이서 열매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잣 열매를 관찰하기 좋은 장소가 호수공원에 있습니다. 정발산역 앞 일산문화공원(미관관장)에서 호수공원 한울광장으로 넘어가는 육교 끝 지점입니다. 육교 끝에서 한울광장 방향으로 오른쪽 청소 도구가 놓인 곳에 잣나무 여러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녹색 열매와 갈색으로 익어가는 열매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잣나무는 열매인 잣이 열린다고 해서 이름이 왔습니다. 바늘잎이 5개씩 모여 나서 오엽송(五葉松)이라고 하고, 나무 속이 붉어서 홍송(紅松)라고도 부릅니다. 열매는 방울열매(구과)이고 다음해 가을에 녹색에서 갈색으로 익습니다. 열매는 소나무와 달리 조각이 잘 벌어지지 않습니다. 열매 속에 잣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씨앗은 딱딱한 껍데기가 감싸고 있습니다. 소나무과로 분류하며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입니다.
 

새로 열린 잣나무 방울열매. <사진=김윤용>

 

열매가 익어 벌어진 모습.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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