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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따듯한 등을 가진 거인, 내 아버지 최인훈…”독자들과 만난 고 최인훈 작가 아들 최윤구 칼럼니스트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8.11.01 18:16
  • 호수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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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작가의 아들 최윤구 음악칼럼니스트가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진행된 ‘최인훈 전작읽기’ 수강자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양시 화정동에서 만년을 보내다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고 최인훈 작가의 아들 최윤구씨가 독자들과 만났다.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진행된 ‘최윤구 음악칼럼니스트에게 듣는 최인훈 작가의 삶과 문학’이라는 특별 강연에 초청된 최씨는 “음악평론을 쓰고, 대학에서 10년 넘게 강연을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강연은 신출내기”라는 말로 조심스러운 심경을 표했다. 이제 겨우 석 달 남짓 된 시간은 사랑하는 부친을 떠나보낸 아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 듯했다.

이 자리는 지난 4주 동안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이권우 도서평론가가 진행한 ‘광장에서 화두까지, 최인훈 읽기’를 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최윤구씨는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최인훈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첫 시간에 청중으로 참석해 주최 측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결국 ‘아버지 최인훈’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참석자들의 요청을 최윤구씨가 수락하며 소중한 자리가 마련됐다.

최윤구씨는 최근 작고한 김윤식 문학평론가를 조문하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동일한 장소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기억이 떠오르며 “정서적 슬픔을 넘어서는 생리적 고통이 엄습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한 시대가 저문다는 생각을 넘어, 한국문학의 황금기가 종언을 고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는 심경을 덧붙였다.

최윤구씨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럽다”고 양해를 구한 후, 청중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초청강연을 대신했다.
 

최인훈 작가의 아들 최윤구 음악칼럼니스트. 그는 “아버지의 등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 오래 전 최인훈 작가님을 뵙고 싶어 서울예대를 무작정 찾아가 강의를 딱 한번 들은 적 있다. 무척 엄격하셨던 것 같다. 집에서도 그러셨나.

영결식에서 아버지께 바치는 글을 새벽밤을 지새우며 썼다. 글 말미에도 밝혔듯 이 나이 되도록 호칭을 ‘아빠’라고 불렀다. 질문에 대답이 되었기를 바란다.

▶ 아버지에 대한 인상적 기억을 들려달라.

성장하며 아버지에게 몇 번 야단을 맞은 적이 있는데, 몹시 황홀했다. 사람이 어쩜 저리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수사법은 아버지에게 야단 맞으며 배웠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한 번은 아버지 작품 『광장』을 읽고 나서 소설 속 연대 기술이 틀린 부분을 지적해드린 적이 있다. 그 때 아버님이 이제 막 갈기가 돋는 어린 사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라이온 킹’ 같은 미소를 지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 최인훈 작가는 문학사에 거대한 정신적 흔적을 남기셨다. 이와는 별도로 가족들에게 남기신 생각이 있다면.

독자에게 전하는 철학과 아들에게 전하는 철학이 일치하지 않는 작가는 대가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신 아버님은 첫 아들인 나를 무척 아끼셨다. 그만큼 감사하고 가슴 아프다. 아버지의 생각과 뜻이 고스란히 아버지의 작품 속에 남아 있어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허전함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낀다.
 

70년대 중반 최인훈 작가의 가족. 무등을 탄 꼬마가 바로 최윤구씨다. <사진제공=최윤구>


▶ 고양에서 만년을 보낸 최인훈 작가를 기념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문인의 기념사업과 관련해 살아생전 긍정적으로 평하신 사례가 있다면.

아버지는 늘 생각을 하며 사신 분이다. 생각으로 인한 정신노동의 양이 엄청나셔서 잠자리에 들면 지쳐 잠이 드셨을 정도다. 하지만 문인 기념관이나 기념사업에 대해 깊이 생각하신 것을 본 적 없다. 다만 당신의 작품이 타당성을 갖는가, 후세에게 전할 수 있는 옳은 생각이 담겼을까를 오로지 고민하셨던 것 같다.

▶ 아버지가 어떤 작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는가.

아버지의 작품이 어렵다는 분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이권우 평론가께서 아버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강연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의 작품을 ‘어렵다’가 아니라 ‘수준이 높다’고 보아주셨으면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초보자에게는 낯설게 마련이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 대표작 『광장』에 대한 애착이 깊으셨는데.

아버지께서 잠 못 들고 고민하시는 걸 본 적이 있다. 무슨 고민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이명준을 그렇게 죽게 한 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라고 말하셨다. 투병 말기에도 광장의 각각 판본을 들고 와서 읽어드리기도 했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죽음은 ‘더 이상 광장을 다시 고쳐 쓸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 아니었을까. 늘 작품 속에서 사셨던 나의 아버지를 보며 ‘문학 그 자체가 되려 하시는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게 그 분의 일상이었고, 나는 문학과 하나 된 아버지에게 압도당한 아들이었다.

▶ 문단이나 지역에서 대외적 활동을 거의 안 하셨다.

많은 분들이 아버지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셨다. 그 때마다 한국사회의 가장 뿌리 깊은 아픔인 분단의 현실을 짚어주는 것으로 대화를 마치곤 하셨다. 그게 아버지 방식의 활동이셨다고 생각한다.

병세가 깊어지셨을 때 아버지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을 보시며, 삼단뛰기 이야기를 하셨다. 힘들고 험악한 현실 속에서도 계속 여러 번 시도하며 이룬 평화와 통일은 더욱 위대한 법이라고.

▶ 작품 집필 과정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버지는 타이핑을 못 하셨다. 초등학교 때 용돈을 아껴 타자기를 선물로 사 드린 적이 있는데, 건드리지도 않으셨다. 『화두』를 쓰실 때 아버지가 원고지를 채워 넘겨주시면, 내가 자판을 치고 프린트를 해 검토를 받곤 했다. 한 챕터가 끝나면 간단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질문과 답변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셨던 분으로부터 저자 직강의 특혜를 누린 셈이다.

▶ 최인훈 작가가 좋아했던 곡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다. 병석에서 아버지가 듣곤 하시던 연주의 녹음연도와 연주자도 정확히 기억난다.

아버지와 함께 즐겨들었던 음악이 굉장히 많다. 한번은 아버지가 가요무대를 시청하고 계신게 아닌가. 그날따라 뽕짝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마음을 울렸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노래한 예가 전 세계에 또 있을까요? 어쩌면 전통가요야말로 식민과 분단이라는 가혹한 시대를 견뎌 온 대중들의 정서를 정말 잘 담고 있는 민중가요인 것 같습니다”라는 의견을 건넸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예의 그 ‘라이온 킹’ 미소를 지으셨다.

▶ 아버지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만난 소감은.

여러분을 만나니 제 역할이 아주 없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 있지 않나. 독자들은 최인훈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거인의 등에 업혀봤던 사람 아닌가. 그 거인의 등이 얼마나 따스했고 부드러웠는지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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