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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대사의 독일편지>한국의 사위, 슈뢰더 전 독일 총리
  • 정범구 주독한국대사
  • 승인 2018.11.02 10:38
  • 호수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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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주독한국대사

<고양의 이웃이었던 정범구 주독한국대사가 SNS를 활용해 흥미로운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고양신문] 10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돌이켜 보니 이 달 한 달 동안 가장 자주 만난 독일 인사가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 총리이다. 만난 곳도 베를린, 아헨, 대전 등 독일과 한국을 넘나들면서였다.

슈뢰더는 1998-2005년간 제 7대 독일 총리를 지냈다. 이로써 사민당(SPD)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브란트(Willy Brandt)와 슈미트(Helmut Schmidt) 의 맥을 그가 이어갔다. 연방총리가 되기 전에는 니더작센주 지사를 세 차례 역임했다.

그의 청소년기는 불우했다.

아버지는 그가 생후 6개월 때인 1944년, 대쏘 전선에서 전사했다. 그는 전사하기 전 까지 자신의 아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핍박한 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슈뢰더는 실업계 학교에 진학했다가 나중에 야간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괴팅겐 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그는 변호사가 된다.

지난 편에 브란트의 불우했던 유, 청소년 시절에 대해 언급했지만, 슈뢰더도 그의 출생배경으로만 본다면 결코 독일 주류사회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그가 독일정치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새삼 독일사회의 저력을 보게 된다.

지난 10월 5일 슈뢰더와 한국인 김소연씨의 결혼식 모습.

이런 입지전적 인물이 한국의 사위가 되었다. 한국인 김소연씨와 지난 10월 5일, 베를린의 유서깊은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가졌다<사진>. 나도 하객의 한 사람으로, 친정 오빠의 심정으로 참석하였다. 150여명의 하객 중에는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내외도 있었다. 외무장관 출신의 대통령은 과거 슈뢰더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결혼 후 슈뢰더 총리는 한-독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달 중순에는 아헨(Aachen)이란 도시에서 열린 독일유학생 모임(ADEKO)에 참석하였고<사진>, 지난 24~26일간에는 대전에서 열렸던 ‘한독 포럼’ 연차총회에도 참석하였다.

24일 저녁 리셉션 행사에서 그는 축사를 통해, "동서 화해를 추구한 브란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것 처럼,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이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25일, 독일 문화원(Goethe Institut) 창립 50주년 축사를 통해서는 "평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장애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물러서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갈 것"을 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슈뢰더 총리 내외가 어제(26일) 광주를 방문하여 5.18 민주묘역을 참배하였다는 기사를 보며 문득 38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1980년 5월 말 경의 일이었을 것이다.

Adeko 총회에서. 아헨시와 다양한 협력사업을 하고 있는 윤화섭 안산시장과 아데코 이사장인 김황식 전 총리.

당시 독일에 있던 교민들과 유학생들은 광주에서 전해져 오는 참혹한 모습들에 거의 반 정신이 나가 있었다. 힌츠페터(Hintz Peter,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기자가 목숨 걸고 광주에서 전하는 상황은 정말로 눈 뜨고 보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계엄군의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진압이 끝난 후 우리는 독일의 양심적 여론을 향해,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판과 압력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 때, 사민당 청년조직인 유조(Jungsozialisten: JUSO) 전국대회가 하노버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 총회 석상에서 한국 대표에게 발언기회를 주기로 약속이 되었고, 그 자리에 학생 대표로 내가 참석해 호소문을 읽기로 했다. 당일 대회장엘 가니 유조 의장이었던 슈뢰더가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독일 온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나는 그가 누군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때 같이 갔던 박재원씨가 그가 슈뢰더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내게는 폴라 스웨터 차림으로 의장석에 앉아 있던 그의 모습만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올해 초, 우리 관저를 방문했을 때 그 때 이야기를 하니 잘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겪어 온 그가 그 때 일을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약간 섭섭하긴 했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광주 민주화 영령들의 희생 위에 우뚝 선 새로운 한국을, 이제는 확실한 한국의 사위가 되어 하나씩 익히고 배워 나갈 텐데…. 슈뢰더 총리 내외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정범구 주독한국대사  webmaster@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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