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 삼 년간 전국단위 규모의 청소년문학상 산문 부문 심사를 맡아왔다.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이 응모한 단편소설 수십 편을 읽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투고한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면 한 편 한 편 허투루 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문학상에 투고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밤잠을 줄여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모질음을 쓰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면 어른들이 깜짝 놀랄 만한 성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응모작의 상당수가 중학교 교지에 실릴 만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깊이 고민할 것도 없이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타인들의 삶을 읽어내고, 깊은 성찰을 통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고 관계 맺으면서, 느리게 사유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고양 어린이·청소년 농부학교의 프로그램 속에는 자신의 경험을 시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다. 이때 쓴 아이들의 시를 보면 소설가인 내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그 수준이 상당하다. 아이들이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할 때에는 부모들도 자리를 함께하는데 발표시간 내내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구체적 경험을 육성으로 녹여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구체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아주 오래 전에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적이 있다. 대부분이 사내아이들이었는데 처음에 녀석들은 원고지 두 줄 쓰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중 한 아이가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엄마는 인터넷에서 베낀 게 틀림없다며 칭찬은 고사하고 어디에서 베꼈는지 이실직고하라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도 구체성이 생기면 글은 술술 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농장에서 ‘텃밭 글쓰기교실’을 만들 생각이다. 그간 농장에서 농사를 매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지만 늘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소설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농장에는 나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작가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작은 도서관도 있다. 그런데도 농사와 예술을 접목시킬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

글쓰기는 내면의 대화를 통해서 사람을 성장시킨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텃밭에서 땀을 흘리고, 평상에 누워 낮잠을 즐기듯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이 ‘텃밭 글쓰기교실’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텃밭 글쓰기교실’을 매개로 마을에 사는 모든 이를 위한 텃밭 예술학교가 만들어지기를 꿈꿔본다.

황당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