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나무에 새긴 마음 & 북앤드

커피나 차를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고, 평안한 사색의 시간을 갖고, 때로는 책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눌 수 있는 곳.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특색있는 북카페 2곳을 다녀왔다. 오가는 이들이 드문 건물 2층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고, 홍보를 하지 않아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는 숨은 보석같은 공간이다. 북카페를 운영하는 주인들의 책과 문화에 대한 시선도 참 깊고 남달랐다.
 

나무에새긴마음 전면


그림이 있는 갤러리북카페
나무에 새긴 마음


서점에서도 구하기 힘든 미술책 서가
수제차와 단팥죽 호박죽 인기

 

북카페 나무에새긴마음 오창준 & 임선례 대표


“이제는 잔잔한 동네 개울물처럼 살고 싶어요. 넓은 바다에서 윈드 서핑을 하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하고 잔잔한 시냇물가에 모여서 물장구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듯이요.” 사무실겸, 북카페겸,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공간을 찾고 있던 차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말하는 오창준 대표를 닮아 공간도 차분하니 조용하고 아늑하다.

백석동에 위치한 오피스텔 건물 2층에 올 7월 오픈한 ‘나무에새긴마음’. 갤러리북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게 이어진 오른쪽 벽면에 액자들이 걸려있다. ‘나무에 마음을 새기는 판화가’로 유명한 이철수 작가의 판화들이다. 반대편에 있는 이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머그컵 등 아트 상품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실에 있던 것을 가져왔다는 말린 꽃도 반갑다.

오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동아출판사, 넥서스, 월간미술, 삼성문화재단 등에서 출판물과 화집을 만들었다. 이후 독립해 ‘컬처북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선집과 전시 도록을 비롯해 화집과 사진집, 문화 예술 단행본을 70여 권 정도 만들었다. 그는 이철수 작가의 ‘나무에 새긴 마음’이라는 선집도 출간했고, 특히 이 책을 좋아해 카페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나무에새긴마음


매장을 꾸민 2인용부터 6인용 이상의 테이블도 각각 독특하다. 이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기도 편하다. 전면에는 유리창이 있어 시원스럽다. 그 아래 3단짜리 책꽂이에 근·현대와 서양 미술 관련 책들이 쭉 꽂혀있다. 그 안쪽으로는 우리의 고미술과 전통미술 관련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입구 왼쪽에 마련한 미팅룸에는 일반 교양 도서들을 갖췄다. 2500여권 정도 되는 이 책들은 모두 오 대표의 개인 소장품이다. 품절되어 다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책들이 많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 오 대표는 동네에 있는 미술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백석동과 호수공원 등 눈에 보이는 미술품에 대한 느낌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정보를 담고 있다. 앞으로 이 글들을 모아 ‘우리 동네 미술품’이라는 책도 쓸 생각이다. 12월 13일에 경주박물관에서 오픈하는 ‘신라를 다시 본다’라는 전시 도록도 제작 중이다.

오 대표 부부는 커피를 워낙 좋아해 90년대 중반부터 커피를 많이 마시러 다녔다. 수년간 집에서 ‘홈카페’도 꾸렸고, 매장 오픈을 염두에 두고 커피 공부를 전문으로 했다. 오 대표가 내려주는 커피 맛이 부드럽고 좋다. 조만간 핸드드립 커피도 제공할 예정이다. 손맛이 좋다고 알려진 임 선례씨가 만든 생강차는 진하고 개운한 자연의 맛을 담고 있다. 지인이 현지에서 보내준 생강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까서 만들어 내는 수제차다. 정성을 들여 직접 만든 대추자, 자몽차, 청귤차와 겨울 메뉴인 단팥죽과 호박죽도 인기다.

이철수 판화가의 '나무에 새긴 마음'과 수제 생강차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독서와 토론의 즐거움(독토즐)’이라는 독서 모임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 대표는 참으로 반갑고 뿌듯했다. 12월 17일에는 ‘느낌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고, 이곳에서 저자와의 대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이 공간에 사람들이 와서 책을 읽고, 미술 이야기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저도 여기서 문화예술 책 읽기 모임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곳이 재능있는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작은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갤러리로 활용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수능 날 찾은 이곳에서 만난 이철수 작가의 ‘가난한 머루송이에게’라는 판화 작품이 인상적이다. “겨우 요거 달았어? / 최선이었어요 /. . . / 그랬구나... / 몰랐어 / 미안해”
 

주소 : 일산동구 호수로 358-25 동문굿모닝타워 2차 216호
문의 : 031-932-8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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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앤드에서 판매중인 책과 내부 전경


동네 아지트 풍동책다방
북앤드


책으로 만난 다양한 소모임 공간
문화교실·취미교실 기능, 책맥가능

 

북앤드 오원배 대표


풍동에 작년 5월 오픈한 책다방 ‘북앤드’. 상가건물 2층,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다소 의외다. 밖에서 보기에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 겸 서점처럼 꾸며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전면 창밖으로 회색 아파트를 뒤로하고 보이는 붉은색과 녹색의 나뭇잎들이 운치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오원배 대표는 이전에 교양 PD로 일했고, 부인 신정화씨는 현직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부부 둘 다 책 읽기를 좋아해 강남에서 책 모임을 하다 동네에서 마을 활동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곳에 책다방을 오픈했다.

“우리동네 아지트, 마을 사랑방이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책이 목적이 아니라 책을 수단으로 이곳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놀 수 있기를 바래요. 전문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공연을 못할망정 이곳에서 우리끼리 공연도 할 수 있는 장소를 꿈꾸고 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학원에서 배운 바이올린 연주를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곳에서 해도 좋죠.”
 

북앤드 내부

현재 이곳에서는 다양한 독서 모임이 진행 중이다. 고전 읽기 문학모임 ‘고달픈’, 함께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글수다’, 중등생 책모임 ‘실화냐’ 등이 있다. 책 모임 외에 취미 교실도 있다. 캘리그라피 동아리, 커피 교육 모임, 초보 기타교실, 엄마가 배우는 가베, 차향 가득한 티클럽 ‘오후 3시에’가 진행되고 있다.

카페 내부는 기증받은 책과 오 대표 개인이 구입한 책으로 꾸몄다. 처음부터 이곳을 책 읽는 공간과 모임 동아리 장소로 활용하고 싶었다. 지금은 매장에서 책도 판매하고 있지만, 김영사 출판사 한 곳 책만 취급한다. 책 판매를 하게 되면 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책을 선정할 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서다. 커피 원두는 조금 고가이지만 ‘함께 잘 살자’는 의미가 좋아서‘함께 커피’를 쓰고 있다. 다른 곳과 차별화된 메뉴는 맥주가 있다는 것. ‘책맥’처럼, 밤에 시를 읽을 때 한 병씩 마시며 모임을 하기에 좋다.

“일산에는 멋진 카페나 특화된 전문 서점이 많은데요. 저는 동네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하는 게 좋았어요. 지금 고등학생인 딸이 초등학생 때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같이 책 읽기 모임을 했는데요.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누린 걸 지금 같이 나누고 있다는 생각도 있어요.”

최근 ‘책으로 같이 노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북엔터네이너’라는 직군을 만들어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책을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인생을 즐겨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책을 영화나 음악처럼 비도서 분야와 접목시켜 함께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 독서는 출판사나 작가 위주가 아니라 독자 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독서 모임도 각자 책을 충실하게 읽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발제 등 다른 모임에서 흔히 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책 모임을 하면서 남자분들 수가 적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런데 의외의 보람은 장인 어른처럼 책을 거의 안 읽던 분이 이곳에 오셔서 책을 읽기 시작하셨다는 거예요. 한 달도 채 안 돼서 조정래 작가의 장편 소설 ‘한강’을 벌써 9권째 읽고 계세요.”

카페 안쪽에 회의실처럼 널찍하게 꾸민 2곳의 개별 공간은 강좌를 위해서 사용 중이다. 동네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맞으면 언제든 이곳에 와서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앞으로 1인 출판을 준비하는 이들의 작업실로도 제공할 생각이다.

오 대표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독서동아리 활동가로 일하고 있고, 부인도 교육지원청 학부모지원단에서 활동 중이다. 고양시에서 지역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관련자들과 모임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독서활동가냐, 마을활동가냐를 자꾸 묻는다. 그는 이런 구분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저 책을 좋아하고, 이곳이 동네 사람들의 아지트처럼 언제나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 오 대표에게 기타를 배우며 연습을 하던 한 여성은 말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집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조금 외롭더라구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같이 하니까 덜 외롭고 힘이 되기도 해요.”

책을 잘 읽지 않는 풍토에서 힘들지만 꿋꿋이 이런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주소 : 일산동구 숲속마을로 50-38(2층)
문의 : 031-903-2940

 

북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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