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봉제산 산신제 지내

도내동 마을 주민들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산신제 거행

11월 11일 해질녘, 덕양구 흥도동 옛 도내 4, 5리 마을 주민들이 도내동 598-2번지에 있는 봉제산에 모여 산신제를 지냈다. 통장 노병석씨가 제관과 축관을 맡았고 박재호씨가 당주를 맡아 제를 주관했다.

이곳 봉제산의 봉제단은 주민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커다란 거북바위가 있는 곳으로, 수 백 년 전부터 도내동의 간촌, 방앗골, 중모루, 은못이, 서재동 주민들이 음력 10월 상달 길일을 잡아 부락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제향을 모시던 유서 깊은 곳이었으며, 지역주민들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또한 이곳은 근처 유치원 학교 등에서 소풍을 오고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3년 전 뜻하지 않은 산불로 인해 봉제산의 수백년 된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사라졌다. 산불이 났지만 마을주민들은 산신제를 계속 지내며 산에 소나무를 식재했고, 올해에는 주민들이 갹출하여 봉제단 표지석을 만들어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한 후 산신제를 하게 되었다.고양군 시절 도내리는 5리까지 있었고, 크게 도내윗리와 도내아랫리로 나뉘었다. 도내윗리에 속하는 1,2,3리는 도당굿을 했고, 4~5리는 산신제를 지냈다, 은못이 마을은 처음 도내윗리에 속했다가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도내 4리에 속하게 되어 산신제에 참여해오고 있다.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10월 상달 좋은 날을 정하고, 부정을 타지 않은 마을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을 가려 당주와 제관을 선정하여 제를 주관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또한 제를 봉행하는 날에 맞춰 일산이나 금촌, 동대문 등까지 걸어가서 소 한 마리를 사오고 밤과 감, 대추, 삼색나물과 팥, 검은콩, 수수 등 세 가지 곡물로 제물을 차렸다. 마을 산신제를 지낼 때는 당주와 제관에게는 금욕적인 생활이 요구되었고, 동네 밖에 나가 있던 마을주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원칙이었다.

언제부터 산신제를 언제부터 지냈고, 큰 비용이 드는 소 한 마리를 제물로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6.25때만 제를 못 지냈을 뿐, 소 값이 치솟았을 때에 소머리와 소족, 간과 내장과 소가죽만 구입해서 제를 지냈으며, 이제까지 계속해서 소 한 마리를 올리고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술은 작은 항아리에 ‘조라술’을 만들어 썼다. 항아리에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고 한지로 항아리를 봉하고 그 위에 항아리 뚜껑을 덮은 후 짚으로 삿갓모양의 주저리를 만들어 덮었다. 이 항아리를 제사지내는 곳 남쪽으로 난 나무 밑에 항아리 입구만 보일 정도로 묻어 두었다가 제를 지내는 날 꺼내 사용했다. 술이 만들어지기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기하게 술냄새가 풍겼다고 한다. 제를 지낸 후 4개의 소 다리는 당주와 제관과 장에 가서 소를 사온 사람과 며칠 동안 소를 돌본 사람에게 하나씩 주었다. 세 가지의 곡물은 바가지에 담아 섞은 후 주변에 흩뿌렸다. 이 행위 역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원칙적으로 산신제에 여성들은 참석하지 않는다. 다만 떡과 나물 등의 제물을 만드는 일까지만 했고, 제를 지내는 모든 일은 남성들이 했다. 특이한 점은 시루떡을 만들 때 일반 고사떡보다 2~3배 두껍게 만든다는 것이다. 제를 지낸 후에는 소고기를 비롯하여 모든 제물을 마을주민들이 분배했다. 요즈음은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며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고 있다.

노병석 통장은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면 희한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도내동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에 참석하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엄숙해진다”며 “산불 이후 주민들이 나서서 서로 화합하며 나무를 심고 주변 환경을 가꾸는 모습을 보며 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비는 산신제의 의미가 이렇게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올해는 봉제단 개막식까지 할 수 있어 마음이 뿌듯하고 주민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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