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보도를 둘러싼 분쟁과 법적 소송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언론보도를 둘러싼 억대의 소송은 다반사가 되었고,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인해 실형선고를 받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달 동아일보가 굿모닝시티 분양비리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정치인들을 실명으로 보도하자 해당 정치인들은 수 십억 원대의 명예훼손 소송을 즉각 제기했다. 한편 대전지법은 대전문화방송 기자들이 이종기 변호사가 판·검사 등에게 사건 알선 소개비 등을 지급하고, 자신이 변호인으로 선임된 사건의 부당한 특혜를 받은 것처럼 허위 보도를 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인정, 기자 4명에게 실형과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하였다.

또한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과 조선, 동아, 중앙, 한국일보를 상대로 모두 3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비방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허위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청와대는 이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대상으로 7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었고, 소위 ‘양길승 사건’과 관련해 문화일보 기자 2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였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사람인 이상 명예가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 제 21조는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거대한 언론의 전파력과 언론기관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리적인 언론기업의 막강한 위세와 편견’으로부터 개인의 권리가 보호받아야 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악의적 보도’를 한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엄청난 특권과 더불어 책임이 부여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헌법을 수호할 책무’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적극 수호해야하고, 이를 위협하는 행위를 저지해야 한다.

더욱이 공직자는 일반인과 다르게 어느 정도 명예훼손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국가의 법이론이다. 대법원은 부정확한 언론보도로 인해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것이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면 법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공인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언론보도가 진실임을 ‘일반의 경우에서와 같이 엄격하게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공인의 명예훼손 소송에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기준을 적용했다. 현실적 악의란 보도한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혹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여부의 확인을 소홀히 한 채 보도하여 공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만 언론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영국의회는 언론보도 내용이 공적 관심사일 경우, 비록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 하더라도 공직자는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이처럼 공직자의 명예보다 언론의 자유를 우선시 하는 것은 감시와 비판 기능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비록 보도할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자신이 없거나, 소송을 우려해 과감한 진실보도를 회피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또한 공직자의 경우, 언론을 통해 오보를 정정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처럼 명예훼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불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물론 한국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관행은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과제이다. 사실 명예훼손 소송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한다고 주장할 명분도 없다. 자신들을 비판한 경쟁언론사에 대해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언론사간의 광범위한 상호비판은 언론의 부패를 막는 내재적인 안전판의 역할을 수행한다’며 언론사들의 관용과 자제를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언론 스스로 언론자유를 훼손한다 하더라도,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을 대통령이 앞장서선 더욱 안된다. 대통령을 본보기로 삼아 공직자의 무리한 명예훼손 소송이 증가한다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기능이 위축될 것은 명백하다. 특히 지역공직자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지역언론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도 높다. 언론자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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