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코코리아 장항습지 모니터링팀

고생도 많지만 보람도 한가득
희귀종 보면 기쁘고, 안 보이면 섭섭…
육화・생태교란종 해결 고민해야
“애정 많으니 해야 할 일도 많아”

 

[고양신문] 장항습지 모니터링을 마치고 돌아온 에코코리아 회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청했다. 특별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지속하는 이들이 고맙기도 했고, 일반인은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장항습지를 2주에 한 번씩 당당하게 출입하는 특권이 부럽기도 했다. 자리를 함께한 이들은 에코코리아 이은정 사무처장과 장항습지 모니터링팀 김지선・김은정・김윤선 회원이다. 보다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이들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장항습지 모니터링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 김지선, 이은정, 김은정, 김윤선 회원(왼쪽부터).<사진제공=에코코리아>

 
오늘은 어떤 선물이 우리를 기다릴까?

장항습지를 모니터링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고생한다고 혀를 차고, 누군가는 재밌겠다며 부러워해요. 맞아요.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고생과 기쁨이 수시로 교차한답니다. 고생스런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길 없는 곳으로 조심조심 다가가야 하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풀벌레에 물리는 일은 다반사지요. 올 여름 태양은 또 얼마나 뜨거웠던가요. 게다가 진드기와 날파리는 왜 이렇게 달라붙는지….

하지만 고생스럽기만 하다면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하겠어요. 사실 장항습지 모니터링에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놀라운 기쁨이 주어진답니다. 여름을 지나며 갈대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자라지요. 강가로 접근하기 위해 키 큰 갈대숲을 헤치고 한발씩 내딛을 때마다 깊은 야생의 품속으로 들어간다는 설렘에 심장이 뛰기 시작해요. 한 걸음에 곤충들이 후두둑 날고, 또 한 걸음에 새들이 기운차게 날아오르고…. 모니터링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생생한 쾌감에 탄성이 절로 나온답니다.

비가 갠 8월 어느 날에는 수천 마리의 잠자리가 우회해서 하늘 뒤덮을 정도로 날고 있는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받기도 했어요. 그래서 매번 오늘은 어떤 감동과 마주칠까, 기대감을 품고 장항습지를 찾는답니다. 105만 명의 이웃들이 살고 있는 커다란 도시 바로 곁에 이렇게 멋진 ‘시티 사파리’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 놀랍고 신비하지 않나요?

살금살금 다가가기, 한눈에 알아채기

에코코리아는 올해도 지난 4월부터 격주로 장항습지에 들어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했어요. 팀원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있어요. 조류관찰을 담당하는 김은정 회원은 ‘움직이는 조류도감’으로 불려요. 새에 관한 한 척척박사거든요. 식물들은 이은정 사무처장이 주로 맡아요. 비슷비슷한 녀석들이 워낙 많아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거든요. 다른 이들도 각각 기록이나 촬영 등 각자의 몫을 담당합니다.

관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최대한 조용히 접근해서 정확히 관찰하고 신속히 기록해야 한답니다. 때로는 현장에서 판단하기 힘든 상황을 사진으로 찍은 후 자료를 찾거나 자문을 구해가며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나무나 수풀에 숨어 눈에 잘 안 띄는 산새들은 소리를 듣고 종류를 알아맞히기도 하구요. 
 

장항습지를 찾은 멸종위기종 저어새.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서 만나는 예쁘고 멋진 친구들

습지는 물새뿐 아니라 산새들에게도 아주 소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지요. 새들의 종류와 개체수가 달라진다는 말은 곧 습지의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따라서 어떤 새가 얼마나 찾아오는지를 꼼꼼히, 그리고 꾸준히 모니터링해보면 습지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답니다.
예를 들어 몇 해 전만 해도 여러 마리가 보이던 개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개리가 좋아하는 먹이식물인 새섬매자기 군락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지요. 식물 조사를 해 보면 영락없이 확인되구요. 이처럼 습지의 식생변화를 보여주는 표준이 되는 종을 ‘깃대종’이라고도 불러요.

매년 겨울이면 반가운 손님 재두루미가 찾아와요. 최근에는 흰꼬리수리가 눈에 띄었어요. 시선을 멀리 강가로 돌리면 기러기 종류와 도요떼가 눈에 들어와요. 먼 길을 이동하는 거대한 민물도요 무리가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장항습지를 중간 기착지 삼아 내려앉아 쉬고 있지요.
물새뿐 아니라, 산새들에게도 장항습지는 소중한 휴게소예요. 멋진 각선미를 자랑하는 장다리물떼새는 올 봄 매화마름논에 물을 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찾아와 줘 모두를 기쁘게 했답니다. 지난 가을에는 흔히 보기 힘든 노랑배진박새가 장항습지를 찾아와 참 반가웠어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만난 날도 잊을 수 없어요. 우연히도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게 돼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청호반새도 우릴 놀라게 했지요. 물고기 사냥 선수인 청호반새는 여름철새라 9월이면 떠나가는데, 11월까지도 장항습지에서 놀고 있는 녀석이 있지 뭐예요. 이곳이 너무 좋아 떠나기가 아쉬웠나 봐요.
천연기념물 저어새도 장항습지의 주민이에요. 주로 서해 갯벌이 펼쳐진 강화도 등에서 발견되는데, 장항습지가 있어준 덕분에 한강의 안쪽까지 올라와 자리를 잡았답니다.

포유류 중에는 고라니와 삵, 너구리의 개체수가 많습니다. 족제비도 자주 보이구요. 무성한 초지 사이로 뭔가 지나간 흔적이 나 있으면 십중팔구 고라니의 통행로예요. 햇빛 좋은 곳에서는 고라니 가족이 머무는 쉼터도 많구요.
그런데 모니터링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녀석들은 바로 멧밭쥐나 등줄쥐처럼 작은 설치류랍니다. 손가락 두세 마디 정도의 작은 몸을 가진 녀석들이 장항습지에서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는 덕분에 족제비나 삵, 황조롱이, 말똥가리 같이 육식을 하는 동물들이 넉넉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먹이사슬의 밑바닥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녀석들, 고맙지 않나요?
 

한 겨울 장항습지를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재두루미.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식은 줄고 퇴적은 늘고…

장항습지에 대해 항상 좋은 소식만 들려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 매력과 가치를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걱정과 고민거리를 정확히 짚어야 하겠지요. 이제 장항습지의 고민거리를 조심스럽게 말해 볼게요.
가장 큰 고민은 습지가 점점 육지화 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장항습지는 큰 물에 의한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면서 경이로운 생태환경을 갖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2012년 이후 큰 비가 내리지 않아 대규모의 침식이 발생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강으로 이어진 펄은 거대한 초지가 돼 버렸어요.

무엇보다도 장항습지를 상징하는 선버들 숲이 점점 축소되고 있어요. 말똥게가 공생하는 선버들 숲은 유일하게 장항습지에서만 볼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곳인데, 매년 그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어 걱정이에요.
선버들의 생존을 지켜주는 생명선은 바로 물골이랍니다. 밀물이 되면 물이 차고 썰물 때면 빠져나가는 물골이 막혀버리면 선버들도 말똥게도 살아갈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올해 모니터링을 들어갈 때마다 물골에 얼마나 물이 차는지를 지속적으로 체크했어요.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습지가 육화되면서 점점 터전이 줄어들고 있는 펄콩게.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갈대와 가시박, 어찌해야 하나?

갈대도 고민을 깊게 하는 녀석이죠. 물론 갈대는 생태교란종이 아닙니다. 가을이면 멋진 풍광을 만들어주는 주인공이지만, 문제는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습지를 잠식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수변부에 갈대가 들어가면 다른 식물종들의 자리를 빠른 속도로 빼앗는답니다. 올해 무더위와 가뭄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던 새섬매자기들이 갈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어요. 땅속뿌리를 뻗기 때문에 가뭄 영향을 덜 받거든요. 장항습지를 생태의 보고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양함이 공존하기 때문인데, 갈대는 이를 단순화시킨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답니다. 낙동강에서는 하중도의 갈대가 수변부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이에 물골을 깊게 판 예도 있어요. 장항습지에 맞는 대책은 뭘까요?

갈대보다 훨씬 무서운 건 가시박과 같은 생태교란종의 침입이랍니다. 모든 생물종은 다 고유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지만, 새롭게 유입돼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몇몇 종들은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라도 확산을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시박이 그 무서움을 증명해주고 있어요. 몇 해 전 신평선착장 부근에서 조금씩 눈에 띄던 가시박이 점점 장항습지쪽으로 진격해오더니, 올해는 결국 중앙부 버드나무숲까지 침입하고 말았어요. 이대로 둔다면 장항습지 버드나무 숲은 수년 내에 가시박 천지가 될지도 몰라요.

가시박은 한번 씨앗을 퍼뜨리면 6~7년 동안 지속적으로 싹을 밀어올리는 끈질긴 녀석이에요. 거꾸로 말하면 지금부터 적어도 7년간 퇴출 계획을 짜서 가시박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내년 봄부터는 최소 일주일 단위로 인력이 투입돼 싹이 올라올 때마다 뽑아주고, 꽃이 핀 후에는 열심히 밑둥을 잘라줘 씨를 말려야 해요. 말이 너무 거칠었나요?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답니다.

성실한 목격자에서 책임 있는 통역사로

인위적 위험요소도 있어요. 장항습지를 통제하던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사람으로 인한 훼손의 우려가 높아졌거든요. 미안한 말이지만, 생태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사람이랍니다. 현재 장항습지에는 농사를 짓는 분들과 어업을 하는 분들이 생업을 위해 정기적으로 드나들고 있어요. 습지보호구역을 담당하는 환경부가 강력한 보전 의지를 가지고 종합적이고 효과적인 관리 매뉴얼을 하루 빨리 만들어주길 바라요. 그 안에는 농어민들을 습지환경 보전의 파트너로 끌어내는 프로그램이 꼭 포함돼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우린 장항습지의 성실한 목격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어요. 이제는 생명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목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통역자가 싶어요. 장항습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많은 이들의 생각을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2월이 코앞이네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가시박 씨앗도 최대한 제거해야 하고, 하루 빨리 재두루미들이 먹을 먹이도 뿌려줘야 하고…. 모니터링만 하면 됐지, 그런 일까지 챙기냐구요? 어쩔 수 있나요. 애정이 깊으면 할 일도 많은 법. 우리보다 장항습지를 더 사랑하는 이들이 또 어디 있겠어요?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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