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상만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1980년대에 초중고를 다닌 나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꿈을 꾸곤 했다. 장래희망의 꿈이 아니라 ‘정말로 잠을 자면 꾸는’ 꿈이었다. 내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어디론가 여행을 가는 꿈이었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하간 어려서부터 본의 아니게(?) 꾸게 된 그 꿈처럼 훗날 어른이 되면 나는 진짜로 차를 운전해 보고 싶었다. 이 말을 당시 친구들에게 전하면 “별 희한한 꿈도 다 가지고 있구나”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내 꿈이 이뤄진 때는 1999년 12월의 일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운전면허증은 일찌감치 땄지만 내 차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인권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내 능력으로는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1998년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동차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절대적인 필요의 대상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큰아이와 둘째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엄청난 고역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이고, 지고, 메고, 안고 본가와 처갓집을 오가는 여행길 끝에 남는 것은 아내와의 신경전이었다. 여행길이 고행길로 된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가용 승용차가 간절했던 그때였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자기 차를 받아서 쓰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차를 바꾸려고 하는데 폐차는 아까우니 좀 수리해서 대신 쓰겠냐”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꿈꿔 왔던 그 꿈, 내가 운전해 어딘가를 가는 그 오랜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그야말로 운전 초보가 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내가 다 한 것 같다. 더구나 물려받은 차가 요즘 흔한 오토 기어가 아닌 5단 기어 차량이었으나 운전이 미숙한 나로서는 그야말로 진땀 한 바가지를 흘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가파른 고갯길에서 기어 넣는 것이 늦어 밀리지나 않을까 땀을 뻘뻘 흘렸고 전진과 후진 기어를 실수로 작동해 다른 운전자들에게 엄청난 욕설을 듣기도 했다. 신호등을 잘못 읽어 사거리 한가운데에서 쩔쩔매기도 했고 목적지를 몰라 돌고 돌아 거리에서 헤매기도 여러 번. 여하간 그런 초보의 경험을 통해 근 20년간 운전을 거쳐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주 능숙한 운전자가 됐다. 지난 20년 동안 이렇다 할 사고도, 또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음주운전과 같은 지탄받을 행위도 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모범적인 ‘오너 드라이버’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자동차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비밀을 알게 됐다. 자동차 운전석에는 ‘다른 운전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두 가지 비밀장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년간 운전을 하며 내가 직접 이 장치를 사용해 본 결과 그 효과는 매우 탁월했고 확실했다. 예를 들어 운전 중 다른 차량과 시비 붙을 일도 이 장치를 쓰면 상대가 머쓱해졌고 괜히 화가 나서 뒤 차가 바짝 붙었다가도 이 장치를 쓰면 이내 속도를 떨어뜨려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적대적 행위를 대부분 중지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 장치가 뭐길래 그럴까” 지금쯤 궁금할 것이다. 다름 아닌 ‘방향 지시등’과 ‘비상 깜빡이’였다. 나는 지난 20년간 운전을 하며 이 두 가지 장치를 ‘반드시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 내가 처음 운전을 하던 2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운전자가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그렇지 않게 됐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유를 모르겠으나 그렇게 운전 인심이 각박해졌다. 이로 인해 운전 중 시비도 늘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보복 운전 시비도 이 때문이다. ‘방향 지시등도 없이 끼어든 후 미안하다는 비상 깜빡이도 안 켜 화가 나 쫒아갔다’는 식의 보도만 봐도 그렇다.

이제 바꾸자. 방향 지시등과 비상 깜빡이 사용한다고 기름이 더 드는 것도 아니다. 있다면 남을 기분 좋게 해 시비 가능성만 줄어들 뿐이다. 이 얼마나 멋진 운전인가. 2019년, 새롭게 시작해 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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