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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힘든 고통 딛고 재속 수녀의 삶을 살았던 어머니고 류홍길 씨의 삶을 기리며
  • 이옥석 전문기자
  • 승인 2018.12.10 15:07
  • 호수 1398
  • 댓글 0

“세상 가장 아름다우셨던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걸음걸음이 무거웠지만 당신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남겨놓으신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각별했던 막내아들 나도은씨는 위독하신 어머니를 바라보는 절절한 심경을 페이스북에 담아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 후 며칠 만에 어머니 부고 소식이 다시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지난 1일 세상을 떠난 모친 유흥길 헬레나의 삼우제를 지내고 나오는 나도은 자유한국당 부대변인과 형, 누나를 만났다. 다들 지긋한 나이가 되었지만 어머님을 떠나보낸 자식들의 마음인지라 깊이 허전함이 배어나왔다. 

삼남매는 동시에 “저희들에게 어머님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동정녀 마리아와 같은 분이셨습니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모친 유흥길씨는 1927년, 충남 서산 최고 부자집 장녀로 태어나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서울로 유학와서 공부한 수재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와 언니동생하면서 지낼 만큼 돈독한 사이이기도 했다. 
해방 후 공부를 마치고 서산으로 내려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미모에 반한 경찰관과 결혼 후 2녀4남을 낳아 키웠다. 이 결혼은 서산 최고 부자집 아가씨로 자란 그녀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전국유도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실력있고 훤칠한 키를 가진 미남 경위의 헌신적인 구애로 결혼을 하긴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어쩔 수없는 가혹한 현실이었다. 
자수성가한 가난한 경찰과의 사이에서 6남매를 낳아 기르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왔다. 경찰보다 더 큰꿈을 가졌던 남편이 결국 경찰복을 벗고 정치의 장으로 떠난 것이다. 그리곤 아주 가끔 집으로 돌아올 때 큰 빚을 안고 들어왔고 그 빚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교사월급으로 빚을 갚고, 남편의 압박 아래 6남매를 키워야했던 그녀는 그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들을 최고로 키우려 엄청난 정성을 다했다. 

대전에서 살면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로 키우기 위해 서울에서 중고과학책과 잡지를 구해다주었고, 집에는 각종 과학실험도구를 사와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실험을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다. 1960~1970년대의 일이었으니 그녀의 교육열은 신사임당 이상이었다. 


자녀들은 이런 어머니의 뜻대로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 탁월함을 보였다. 특히 3째 아들이었던 작고한 나대일 박사는 그런 어머니의 뜻대로 노는 것이 ‘공부’였고, 뭘 해도 빠져들며 깊이 있는 학문의 세계를 구축하며 서울대학교 입학 후 미국유학길에 올라 버클리대학 박사후 과정을 마친 후 미국대통령상을 받았고, 나사(NASA)의 영입 제안도 받았지만 고국의 후진 양성을 결심하고 귀국길에 올랐지만 고국은 그를 싸늘하게 대하고 말았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학계의 태도에 휘둘리며 실망하고 견디기 힘들어하면서도 국내 대학에서 교육에 전념하다가  가족력인 대장암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청소년 교육용으로 1993년에 쓴 책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은 지금도 물리학도 뿐만아니라 일반인들도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할 만큼 탁월한 책으로 알려졌다. 

가정에 무관심했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지낸 몇 년의 시간은 아내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소중한 기억이었다. 생전 처음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누리다가 암선고를 받고 수년간의 고생 끝에 49세에 세상을 떠난 남편. 그리고 병수발로 남겨진 빚. 그녀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그런 짤막한 행복 뒤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불교에서 천주교로 귀의한 그녀는 1987년 대전 가르멜 수도회에 재속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이 되었으며 10년간의 수련 끝에 1997년 종신서원을 하고 세상에 속한 수녀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가르멜 수도회 수녀들은 평생 수도원 밖을 나올 수 없어 세상의 일을 재속수녀가 대신하는데 유흥길씨가 그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세상에 살면서 수녀가 지켜야할 계율을 지키고, 동시에 빚더미 위에 앉은 채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자신만을 바라보는 6남매를 여자 혼자의 몸으로 자녀들을 먹여살리고 학교를 보내고 사회에 진출시켰다. 
그녀가 하느님께 수녀로서의 삶을 서약한 후 4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또 한 번의 깊은 절망가운데로 빠져버렸다. “1998년에 노벨상을 받을 유망주였던 대일형이 돌아가셨고, 2000년에 대전MBC성우 1기였고 재벌가 며느리였으며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회장이었던 혜령 누님이 뇌종양으로 돌아가셨고 그 해에 내가 대장암으로 수술 받았고, 2001년에는 작은형이 위암수술, 2002년 작은형과 큰형의 대장암수술이 연이어졌다. 어머님은 두눈을 뜨고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다”고 한다. 


그녀 나이 70대 중반에 겪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사망과 암 선고와 수술. 견디기 어려웠을 텐데 그녀는 굳건히 견뎌냈다. 세속에서 수녀로서의 삶을 지키며 자녀를 행복을 위해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 글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난의 삶을 기도로 버티며 하느님께 서원한 일생의 정결과 순명을 지켰고, 사후 가르멜수도회의 모든 수도자들과 재속회원들의 참여 속에 수녀의 예를 갖춰 장례식을 치렀다. 
나도은씨는 모친이 썼던 글과 70세 이후에 취미로 배워 찍은 사진 등을 모아 전시회를 갖겠다고 한다. 더 편한 길을 가실 수 있었지만 그 많은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자녀의 미래를 품고 평생 고생하며 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셨던 어머니’를 위한 작은 파티다, 나이든 자녀들이 모친의 모진 삶에 깊이 감사드리며 영원히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옥석 전문기자  los1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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