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가라타니 고진이 쓴 『윤리 21』의 맨 앞부분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연소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 부모가 책임추궁을 당하는 여러 사례가 나와서이다. 물론, 일본의 사례이다. 연소자만이 아니라 적군파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청년도 같다. 적군파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불특정한 사회적 압력 탓에 직장을 그만 두거나 심지어 자살하기까지 했다. 고진은 미국의 사례를 든다. 터무니없는 소년범죄가 일어났을 때 부모는 당당히 아이의 무죄를 믿는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은 어머니라면 자신의 아이를 변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반응이 적절할까?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연소자가 사고를 치면 부모가 공개사과를 한다. 거기에는 인터넷의 힘이 한몫하는 듯싶다. 이른바 신상털기로 가족관련사항을 널리 알려버리니,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서둘러 반응을 보인다. 그런 장면을 볼 적마다 불편했다.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났다. 충분히 해명하고 조사하고 법리다툼을 벌여 진상을 밝힌 다음에 죗값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신이 지은 죄도 아닌, 자식이 저지른 걸로 추정되는 범죄에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문화가 자리잡는 듯싶다. 연소자의 범행은 부모 탓인가? 탓을 한다면 우리 모두가 사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원인(遠因)도 있을 테니.

고진은 엔치 후미코의 『식탁이 없는 집』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이 작품은 아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부모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주제로 다루었단다. 아들의 아버지는 “아들이 한 행위를 지지하지 않지만, 아들이 책임을 져야 할 (자유로운)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려” 했다고 한다. 사과하지 않은 바, 부모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면 자식의 주체성을 손상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고진은 이 아버지의 판단이 지극히 “윤리적”이라 평가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최근에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연예인의 부모가 진 빚을 갚지 않았다며, 그 연예인의 실명을 공개하는 일이 일어났다. 늘 대중의 관심과 감시를 받는 연예인 당사자가 빚을 떼먹을 리는 없다. 이미 사달이 났을 테니까. 그런데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가 연예인 자식의 이름 팔아 빚을 떼먹었다면 이건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 짐작할 법하다. 아니나 다를까 대체로 부모가 이혼한 상태고, 경제적인 갈등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고 알려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며 안타까웠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왜 우리사회는 그 연예인의 가족사를 다 까발리는가? 이것도 공인에 대한 알 권리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걸까?

더욱이 이 사건은 성인들 사이의 문제다. 그 누구의 아비이건 어미이건, 빚을 진 사람을 대상으로 고소해 법적 판단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네가 유명하니 그 인기 누리려면 대신 빚 갚으라고 압박했다. 이미 부모자식간의 연도 끊은 사이인데도 연예인이 그 빚을 갚아야 할까? 물론, 억울할 거다. 일부 사례를 보면 악의적인 사람도 있고, 법에 호소해서는 되찾기 어려워 상황도 보인다. 그럼에도 더 신중했어야 한다. 폭로한 쪽이나, 이를 널리 알린 언론 쪽이나. 만약 언급된 연예인이 명예훼손죄로 걸면, 법리적으로 유죄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짧은 법 상식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의 빚을 감당해야 할 경우는 연대보증을 섰거나, 채무상속을 했을 때다. 그렇지 않다면, 빚을 갚을 의무가 없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면서까지 돈을 받고 싶은 다급한 심정이야 이해되지만,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연좌제라는 괴물을 만나게 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그 죄가 확정되면, 죄를 지은 사람에 한해서만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책임지는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이 광풍이 다시는 일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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