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칼럼>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양신문] 영국은 유럽 선진국 중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지역불균형 양상을 보이는 나라이다. 수도인 런던에 정치권력과 경제자본이 집중되어 있고, 언어나 문화 측면에서도 런던은 일류, 지방은 이류라는 차별의식이 강하다. 자연히 런던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고, 그로 인해 런던은 심각한 주택난과 교통난을 겪고 있고, 지방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인구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다.

언론 분야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영국의 유력 언론사들은 모두 수도 런던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1100여 개의 지역신문이 전국 각지에서 발행되지만 런던에서 발행되는 10여 개의 전국일간지가 영국 신문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국가 중에는 드물게 영국은 지역신문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한 국가이다.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친 이후 극도의 혼란 정국으로 빠져든 요인 중에는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런던에 몰려있는 타블로이드 전국신문의 선동적 보도만 없었어도 영국이 지금과 같은 난국에 처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지난 10년간 300여 개의 지역신문이 폐간되었다. 지역신문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영국사회에는 지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지역정부를 감시하는 지역언론의 공익적 기능이 위축되면 민주주의 근간 자체가 흔들린다는 주장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역신문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BBC는 국내 TV 채널만 10개에 달하고, 직원은 2만 명이 넘고, 한해 예산은 50억 파운드(7조1400억원)이다. 영국 국민들은 BBC 1년 시청료로 가구당 147파운드(20만원)를 납부하고, BBC는 전체 예산의 70%를 시청료로 충당한다.

BBC 시청료를 강제 징수당하는 영국인들은 그동안 언론보도의 공정성, 프로그램의 다양성 등과 관련해 많은 불만을 표시해왔다. 지역뉴스가 부족하고 부실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BBC는 영국의 지역언론사들과 ‘지역뉴스 제휴사업 Local News Partnership’을 시작했다. BBC의 자산과 인력을 지역신문과 공유하면서 공익적 위상을 높이고, 영국 언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BBC는 영국언론협회(News Media Association)와 협약을 맺고, 2018년부터 공모방식을 통해 90여 개의 지역언론사와 제휴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BBC 지역뉴스 제휴사업은 크게 세 개의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신문사들이 BBC의 영상, 녹음 자료를 사용해 뉴스를 제작할 수 있다.
▲최대 150명의 기자를 채용해, 전국의 지역신문에 배치한다. 이들은 지역정부와 공공분야를 취재해 BBC와 공동 보도한다.
▲BBC의 데이터 저널리즘 기술을 지역 언론인들에게 전수하고 공동기사를 제작해 공유한다.

BBC가 지역뉴스 제휴사업에 할당한 1년 예산은 8백만 파운드(115억원)로, 전체 예산의 0.16%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해의 평가만 보더라도,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회복과 지역신문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양상이다. 신뢰위기에 처한 한국의 공영방송과 경영부실을 면치 못하는 한국의 지역신문이 참조해 볼만한 해외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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