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지난달 원주에 내려갔다가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오래전에 귀농한 선배 한 분이 산속에 음식점을 차렸다는 것인데 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요리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부천에서 논술학원을 크게 운영했던 그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 돌연 모든 걸 접고 지인이 있는 원주로 귀농을 했다. 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못내 미안했다는 게 귀농의 이유였다. 원주 외곽 산자락에 삼천 평의 밭을 사서 정착한 그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만만치가 않아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산을 누비고 다니면서 약초를 캤다. 봄에 산에서 따온 오디로 잼을 만들어서 삼백만원의 소출을 올렸다며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위에서 옥수수 농사를 짓는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올려보낼 옥수수는 자기에게 산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그에게서는 유기농을 하는 이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요리에 호기심을 느끼고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자신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이 농사지은 채소들과 직접 산에서 채취한 약초들로 제철 채소 비빔밥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살던 집을 개조해서 음식점을 차렸다는 것이다.

직접 찾아가서 맛본 비빔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요리였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 다양한 효소들과 장으로 맛을 낸 음식들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깔끔했으며 먹고 난 뒤에는 속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무엇보다 감명 깊었던 건 그가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가 아니라 명절날 내려온 자식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오지나 다름없는 외진 산속에 자리 잡은 음식점에서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데도 예약이 꽉꽉 들어찬다는 것이다.

농장 한쪽에 자리 잡은 음식점을 나서면서 나는 최고의 대접을 받고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선배가 그냥 고마웠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허기진 위를 채우는 게 아니다. 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옛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그릇의 밥을 먹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밥상 앞에서 밥알을 남기거나 흘리면 아버지는 쌀 한 톨에는 농부의 피땀이 들어있다며 호되게 꾸지람을 하시곤 했다. 먹는 게 너무 흔해진 탓일까, 이제는 그런 꾸지람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 음식으로나 한 끼 때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일상이 되고, 비싼 음식이 귀한 음식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이 보편화되었다.

몇 해 전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사람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농사지은 채소들로 제철음식점을 하나 차렸으면 좋겠다는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논의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최근 그 논의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주도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키운 유기농 채소들로 음식점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말이 다시 나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몹시 반가웠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고양시의 도시농부들이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제철 채소들로 정성스레 차린 밥상을 받아볼 수 있는 음식점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 밥상 앞에서 먹는다는 게 참으로 고맙고 기쁜 일이라는 걸 일 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몸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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