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빈 사진전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들’

아트스페이스 애니꼴 새해 첫 전시
20년 전 훈춘에서 찍은 사진 선보여

 

시장 한편에서 뜨개질 하는 여인들. 2003년. <사진=엄상빈>


[고양신문] 일산동구 풍동 애니골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 애니골이 준비한 2019년 첫 전시는 엄상빈 사진전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이다. 오는 7일부터 선보이는 전시에서는 사회적 타큐멘터리 사진의 장인 엄상빈 작가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 길림성 훈춘 일대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찍은 사진 40여 점이 전시된다.

사진 속에는 두만강 건너 북녘땅을 눈앞에 둔 훈춘시에서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의 소소한 생활상이 흑백의 화면 속에 담겨있다. 전시 오프닝에 발맞춰 사진집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들』(눈빛刊)도 출간된다.

2016년 고양시 유일의 사설 순수미술 갤러리로 문을 연 후 회화와 조형, 사진,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순수미술을 선보여 온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은 2019년 상반기 동안 주목할 만한 사진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를 연이어 기획하고 있다. 정연영 큐레이터는 “지난해부터 무르익고 있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엄상빈 작가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영감을 던져줄 것”이라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저학년 학생들. 2002년.<사진=엄상빈>


엄상빈 사진전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들’

전시기간 : 1. 7(월)~2. 17(일)
개막식 및 출판기념회 : 1월 12일(토) 오후 3시
장소 : 아트스페이스 애니꼴(고양시 일산동구 애니골길 70)
문의 : 031-2269-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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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메라는 늘 약자와 서민을 향했다”

<인터뷰> 엄상빈 사진작가
 

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 35년간 촬영
평범한 사진 속에 시대의 모습 담으려 노력
"남북 화해분위기 속 고양에서의 전시 반가워" 

 


어떤 전시인가.

햇볕정책으로 남북 화해 무드가 진전되던 2000년 속초시와 중국 훈춘시가 자매결연을 맺게 되며 문화예술인 교류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당시 민예총 강원지회장을 맡고 있는 나는 매 년 훈춘시를 방문할 수 있었다. 훈춘은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조선족 비율이 40%가 넘는 도시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60~70년대 우리의 삶과 닮아있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북녘 땅 함경도 어딘가에 온 것 같은 인상을 던져주었다. 시간상으로는 20여 년 전 두만강변 조선족들이 사는 도시의 여러 가지 표정을 담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경력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는 자부심 자체다. 그동안 15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사진집을 12권 냈다. 특히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속초 아바이마을 사람들을 35년 동안 꾸준히 카메라에 담았다. 2000년도 미전향 장기수 할아버지가 북으로 갈 때 아바이마을 풍경이 담긴 내 사진집을 가져가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두메산골마을인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의 산골마을을 누비며 사라져가는 풍경을 담기도 했다. 10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이 광화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소장됐다.
 

훈춘에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시만 해도 두만강변 조선족 마을의 풍경을 소개한다는 것이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국경지역 특유의 살벌한 긴장감 속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하지만 농촌마을과 거리, 시장과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참 순박했다. 무엇보다도 두만강 너머 북한땅을 바라보는 마음이 참 복잡했다. 헐벗은 민둥산이 그들의 척박한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최근에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훈춘지역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강 건너 풍경은 여전했다. 그들의 고통이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여전히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나…. 많은 생각을 했다.
 

길에서 만난 부자. 2003년. <사진=엄상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시장에 들렀다가 우연히 좌판에 나란히 누운 도축된 개들과 양머리 등 조금은 엽기적인 모습을 담기도 했다. 조선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마주친, 양철도시락이 쌓여 있는 교실 모습은 꼭 60년대 내 어릴적 풍경 같았다. 거리에서는 순 우리말을 사용한 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새각시 혼사방’이 뭔가 해서 봤더니 웨딩 스튜디오였다.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우리네 심성의 원형이 그곳에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사진작가로서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나는 늘 사람들을 찍었다. 그것도 약자와 서민만을 말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적 다큐멘터리 작가로 불리곤 한다.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꾸준히 담아놓으면, 언젠가 내 사진들이 한 시대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지 않겠는가. 나아가 가능하면 시대의 표정을 담은 사진을 찍으려 한다. 그러면 사진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얻는다. 20여 년 전 찍은 훈춘에서의 사진들이 지금 새롭게 주목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에 거는 기대는.

20여 년 세월의 애정과 인연이 담긴 사진들이다. 남과 북이 다시 통일의 물꼬를 트는 시점에서 사진집이 발간되고, 동시에 판문점과 멀지 않은 고양에서 전시를 열게 돼 무척 기쁘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오셔서 사진 속에 담긴 간절한 통일의 열망도 함께 감상해 주시기를 바란다.
 

 

한글 간판이 늘어선 길거리. 2001년. <사진=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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