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장항습지 생태교란종·쓰레기 문제 모니터링

상류~하류, 모두 가시박 점령
끝도 없이 나오는 쓰레기
특단의 복원 대책 필요하다

 

가시박에 점령당한 장항습지의 녹지대. 신곡수중보부터 하류까지 이같은 스산한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고양신문] 이 풍경은 대체 무엇인가. 멀리서 보면 시커먼 공룡들이 운집한 모습을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처럼 기괴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비닐하우스를 지을 때 사용하는 두툼한 보온담요를 길게 뒤덮어 놓은 듯도 했다. 흑갈색의 바싹 마른 덩굴이 얽힌 가시박과 환삼덩굴 그물은 점령당한 식물들에게 한줌의 빛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촘촘했다. 가시박 덩굴에 잡아먹힌 키 작은 선버들은 그대로 둥근 무덤이 돼 버렸고, 키가 큰 수양버들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굵은 가지를 하나 둘 부러뜨리며 쓰러져가고 있었다. 갈대와 물억새도 가시박에게 자리를 내 주고 밀려나기 시작했다. 황량하고 참담한 죽음의 벨트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신곡수중보에서 장항IC까지 ‘온통 가시박’

고양신문은 지난해 11월 외래식물에 점령당한 장항습지의 실태를 밝힌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1395호 ‘생태교란종 가시박 습격, 장항습지가 위태롭다’ 참조). 당시 취재 여건상 생태탐방로 주변만을 살필 수밖에 없었기에, 이번에는 장항습지의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봤다. 지난 3일 장항습지가 시작되는 신곡수중보 하단부터 생태탐방로가 설치된 장항IC 부근까지, 약 4km 구간을 걸어서 이동하며 외래식물 유입과 쓰레기 매립 실태를 모니터링했다.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의 길안내로 진행된 모니터링에는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윤용석 고양시의원이 동행했다.

실태는 참담했다. 참가자들은 끝없이 이어진 가시박 그물띠의 행렬에 할 말을 잃었다. 여기가 과연 환경부가 지정한 한강하구 습지보호구역이 맞을까. 일반 녹지대도 이 지경이 됐다면 당장 어떤 조치가 취해졌을 텐데, 국가에서 관리하는 습지보호구역이 이런 모습으로 방치된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고양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람사르 사이트에 등재해 세계적 습지환경 보고로 인정받겠다며 이런 저런 홍보에 열을 올리기에만 바빴지, 정작 장항습지의 실태파악과 관리계획 수립조차 진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이 들고 나는 갯골 주변의 땅도 가시박의 위세를 피하지 못했다.


3년 전부터 예고된 재앙, 당국은 묵묵부답

3년 전 처음 장항습지에 모습을 드러낸 가시박은 장항습지의 시작지점부터 하류 방향으로 점점 세력을 넓혀 지금은 이미 장항습지의 종착점인 일산대교 아래까지 세력을 확장했다는 게 박평수 대표의 설명이다.

“딱 3년 만에 습지 전체에 급속히 퍼졌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가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이죠. 장항습지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시에 선제적 조치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시간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다른 씨앗에 비해 무게가 무겁고 촘촘한 잔가시가 박혀있는 가시박의 씨앗은 진흙 속에 묻혀 오랜 잠복기가 지난 후에도 싹을 내미는 특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장항습지 전체의 진흙바닥에 가시박의 씨앗이 퍼져 있을 가능성이 무척 높고, 그 씨앗들이 수 년 동안 집요하게 싹을 밀어 올릴 것이라고 박 대표는 설명한다. 그는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관계당국의 무관심을 성토했다.

염형철 대표는 “올해부터라도 확실한 퇴치 계획을 세워 수 년 동안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가시박의 싹이 올라오는 봄부터 열매를 맺기 전인 여름까지 가시박 제거작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 작은 나무를 점령한 가시박. 이대로 두면 키 큰 나무들마저 가시박에 잡아먹힐 기세다.


플라스틱·스티로폼 곳곳… 쓰레기섬이 따로 없네

장항습지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 상황도 심각했다. 바닥을 뒤덮은 가시박 덩굴을 조금만 들추면 진흙과 함께 묻힌 쓰레기들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니터링에 동행한 이들이 반경 10m 정도의 범위에 매몰된 쓰레기를 발로 파 내 모았는데, 아주 잠깐 동안 한 무더기가 될 정도로 양이 많았다. 장항습지 전체에 도대체 얼마만큼의 쓰레기가 얹혀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초록색 식물들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잎이 말라버린 겨울이 되니 실상을 드러낸 것이다.

쓰레기는 각종 페트병, 플라스틱 제품, 스티로폼 등이 많았다. 일행 중 한 명은 “태평양을 떠다닌다는 플라스틱 섬을 장항습지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류로부터 쓰레기가 떠내려오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문제는 가시박 문제와 마찬가지로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박평수 대표는 “자원봉사자들이 간헐적으로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채워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제거활동이 이뤄진 바 없다”고 말했다. 종량제 봉투 몇 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불 보듯 자명했다.

3시간에 걸친 모니터링을 함께 한 윤용석 시의원은 “고양의 생태 보고라고 불리는 장항습지의 실상이 이처럼 심각할 줄은 몰랐다”면서 “이곳을 과연 생태 습지라 부를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 빨리 종합 관리대책이 수립되도록 시의회에서도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가시박 덩굴 아래 묻힌 쓰레기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링 참가자들.

 

반경 몇 m에서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금새 한무더기다.


“대책 세우겠다”는 환경청, 믿어도 될까

이날 모니터링에 참여한 이들은 장항습지의 지속적 육화(습지가 육지처럼 단단해지는 현상), 신곡수중보의 존폐 등 거시적 문제도 논의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생태교란종 확산 방지와 쓰레기 제거와 같은 가장 기초적 조치가 하루 빨리 진행돼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관계당국의 입장은 여전히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장항습지의 가시박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유역청은 “고양시와 시민단체 등과 협의를 거쳐 효율적 처리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을 대야 할 면적이 워낙 넓고, 습지구역의 특성상 제거작업에 여러 가지 장애요소가 많아 전문성을 가진 업체가 주기적으로 제거작업에 투입돼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양시 환경보호과 역시 “습지보호구역에서의 모든 행위는 한강유역환경청과 협의를 거쳐 결정돼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시가 약속한 협의와 관리대책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를 지켜봐야 하는 시민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자연은 인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풀리고 땅 속에 박힌 가시박의 씨앗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미는 모습, 상상조차 두렵다.
 

쓰레기와 가시박 덩굴이 함께 있는 모습은 장항습지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말똥게의 밀집 서식지인 중심 갯골. 온통 떠밀려 온 쓰레기로 가득하다.

 

장항습지 실태 모니터링을 함께 한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 윤용석 고양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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