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인터뷰 - 이호경 전 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장

25년간 노인복지 서비스 현장 지켜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시대적 흐름
사회복지정책 우선순위 재조정 필요 
‘예방적 노인복지’로 삶의 질 높여야 

 

이호경 전 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장은 "노후가 행복할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된다면 출산, 양육, 교육, 청년, 지역불균형 등 각 분야의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복지 분야도 100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양신문]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삽니다. 초겨울 삭풍 속 나뭇가지 끝에 남아 있는 최후의 ‘씨과실’인 석과는 고난과 역경을 상징하죠. 그러나 그 씨과실은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입니다. 먹지 않고(不食) 땅에 심으면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노인복지 분야도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작은 희망의 씨앗은 뿌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말 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의 관장직을 내려놓은 이호경 전 관장은 노인복지 업무를 이어오며 보람도 크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는 양천노인종합복지관을 시작으로 동대문·파주·덕양노인종합복지관에 이르기까지 약 25년을 일관되게 노인복지 분야에 헌신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줘왔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 분야에 너무 큰돈이 들어간다고 오해하곤 합니다. 덕양노인종합복지관의 하루 이용자 수가 약 2200명이에요. 복지관의 본예산이 연간 약 24억원 정도니까 개인당으로 따져보면 1년에 1인당 10만원도 안 되는 비용이죠. 하루 150명이 이용하는 시설의 1년 예산도 안 되는 비용으로 어르신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지분야 민간 역할 인정하고 지원해야
이 전 관장은 복지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비용 대비 서비스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노인 일자리 사업의 경우 일자리의 ‘양’에 치중하다보니 자원봉사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분야도 일자리 사업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정작 중요한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 분야의 업무 구분과 역할 그리고 인식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복지 분야의 모든 일을 정부가 다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는 민간 분야의 자원을 활용하며 상당한 역할을 부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예산으로만 따져서 집행하려하고, 그러다 보니 민간 부문을 단순히 복지사업의 수행자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는 복지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 부문을 통제나 감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민간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이제는 정책 담당자들이 큰 틀에서 노인복지 문제를 정책의 중심에 놓고 다시 바라보며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노후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출산, 양육, 교육, 청년, 지역불균형 등 각 분야의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살게 될 텐데 복지 분야도 그에 걸맞은 100년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어르신들이 사회로부터 대우받고 복지 서비스 수혜만을 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동안의 경륜과 노하우를 살려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가면서 공동체에 기여한다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떳떳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 노년문화'의 개념이다.

 

어르신 경륜 살려 공동체 기여토록 해야
그는 고양시 인구가 105만이 넘었고 노인 인구도 점점 늘어가는 만큼 그 규모에 맞는 노인복지 정책 구현을 위해 인프라를 더욱 확충하고 체계적인 서비스 전달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전반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도 여성, 노인, 아동, 장애인 등 대상별로 시행할 것이 아니라 전체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의 관점에서 재조정하면서, 노인 복지는 ‘사후적 복지’가 아니라 ‘예방적 복지’를 통해 노인들이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드리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이 전 관장이 그동안 특히 더 주력해 온 것은 ‘신 노년문화’ 창출이다. 어르신들이 사회로부터 대우받고 복지 서비스 수혜만을 원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륜과 노하우를 살려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가면서 공동체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떳떳한 사회 구성원이 된다면 자연스레 세대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고 설득했다. 많은 어르신들이 “관장님 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함께 하니 몸도 더 건강해지고 즐거워졌다”라고 공감하면서 활동하는 모습도 무수히 봐왔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요즘 어르신들은 신바람 난 경로당 경연대회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는 모습에서 보는 것처럼 연세가 많아도 대체로 다들 건강하세요. 어르신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찾아서 하신다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고 원숙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25년간 그래온 것처럼 늘 현장을 지키면서 복지 분야 후배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또 어르신들과 계속 함께하면서 신 노년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남은 제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 노년은 바로 저에게도 곧 다가올 미래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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