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태원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교수신문 설문조사 결과, 작년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선정됐다는 보도다. 논어 태백 편에 실린 고사로 짐은 무거운데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전국 대학교수 878명 중 40%에 가까운 341명이 선택한 결과라 한다. 이를 추천한 교수는 현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구상과 각종 국내정책이 뜻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은데,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다고 한다.

구름만 가득 끼어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의 밀운불우(密雲不雨), 성공은 결국 그만두지 않음에 있음을 뜻하는 공재불사(功在不舍),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본다는 뜻의 운무청천(雲霧靑天), 그리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눈치만 살피는 태도를 비유하는 좌고우면(左顧右眄) 등이 그 뒤를 이었는데, 현 시류를 보는 관점이나 앞으로 기대하는 희망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내용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현 정부의 집권 2년차였던 작년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봇물 터지듯 한 남북 정상회담과 교류,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이 어느 때보다 한껏 부풀었던 한 해였다. 지금으로선 비핵화와 대북 경제제재의 이해관계가 얽혀 답보상태에 있지만 올해는 잘 해결되리라 기대해 본다.

또, 적폐청산 등을 둘러싸고 국민들 사이의 반감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사법, 노동, 재벌, 복지 등 정치사회 분야의 개혁도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의 실효성 논란으로 경제기조는 구호로만 느껴졌고, 지금 우리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하다. 여기에 각종 재해와 재난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들로 얼룩진 우리사회는 재도약과 퇴행의 기로에 서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사회는 어땠을까. 작년 말, 이미 수차례의 지반침하와 도로균열로 홍역을 치렀던 일산 백석동에서는 지하철역 인근 도로와 건물 주위로 섭씨 1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세례를 받아, 예비사위와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60대 시민이 차 안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또 평화롭던 일요일 오전에 덕양 화전동에 있는 옥외 기름 저장탱크가 폭발하며 일대가 큰 불기둥과 짙은 연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공할 위력으로 다가오는 각종 재해와 재난에 대비해 지방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지역난방공사와 송유관공사 등 운영관리 주체에만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불편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각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유사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 또 환경과 에너지 등 도시기반시설의 효율적인 운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소극적인 위성도시 역할을 벗어나기 위한 시발점이다.

한편, 지난해 말 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건설공사 착공식이 있었다. 경기도 파주 운정에서 화성 동탄 사이 83.1km 구간 중 파주에서 삼성역까지 43.6km 구간에 복선 전철을 놓아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 도심까지 20분 이내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사업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재정부담, 수익성 논란과 함께 지역에서는 복합환승센터 건설부지난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는 있지만, 출퇴근 시간대 교통난 해소와 이동시간 단축에는 일단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사회 측면에서는 걱정도 앞선다. 빠른 접근성의 결과로 일과 문화생활은 서울에서 즐기고 집이 있는 수도권에서는 잠만 잔다면 베드타운으로서 위성도시의 역할과 기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인재와 산업이 유출되고 공동화가 가속될 수 있다. 지역사회 인재를 키워서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첨단산업을 발굴, 육성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또 활발해질 남북 경협에 따른 인적 교류와 물류의 경유지로 자리를 내주고 바라만 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약 30년 전, 제1기 신도시로 건설된 우리 도시는 이제 많이 낡았고 이웃 신생 도시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신도시라는 이미지조차 이미 퇴색된 듯하다. 작금의 좋은 분위기와 기회를 지역사회가 다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올해는 우리 지역사회가 안전하고 살맛나는 자족도시로 탈바꿈되도록 차분하게 준비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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