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얼빈 국제눈조각경연대회 우승, 한선현 작가

차별화한 작품으로 관객·심사위원 사로잡아
화전 벌말에 자리 잡고 전방위 창작활동
다음달 9일부터 ‘안녕! 화전상회…’ 전시

 

화전 벌말에 예술창작공간을 마련하고 활동중인 한선현 작가.


[고양신문] 목조각과 회화작업으로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한선현 작가는 최근 중국 하얼빈 국제 눈조각경연대회에 참가해 1등을 차지한 후, SNS를 통해 가장 먼저 고양신문에 낭보를 알려왔다. 화전 벌말의 오래된 구멍가게를 ‘치아오(chiao)’라는 예술인공간으로 리모델링해 활동하고 있는 한 작가는 “내가 활동하는 동네의 이웃들에게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얼빈에서 돌아오자마자 코앞으로 다가온 전시 준비를 위해 바쁘게 뛰면서도, 이웃들이 찾아와 건네는 따뜻한 축하 인사 덕분에 기운이 펄펄 솟는다.

그는 이번 대회에 조각가 홍순태 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국제대회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학생 신분이던 1990년대 초 국내 처음으로 열린 용평 눈조각 대회에 참가해 입상하며 눈조각과는 일찌감치 인연을 쌓았었다. 그렇지만 대회 우승의 공로를 홍순태 대장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돌렸다.
“국제대회에 수차례 참가한 홍 대장의 경험과 실력, 그리고 탁월한 구상을 다른 멤버들이 열심히 작품으로 실현해 냈지요. 각각 고양, 삼척, 양평, 파주 등에서 모인 4명이 한 팀이 돼 신나고 즐거운 도전을 펼쳤습니다.”
 

하얼빈 국제눈조각축제에 참가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대표팀. <사진제공=한선현 작가>


한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겨울축제가 열리는 하얼빈의 맹추위 속에서도 동료들이 서로 격려하며 열정을 불태운 덕분에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팀이 출품한 작품명은 ‘인 히스토리’다.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고, 책의 갈피갈피에 미켈란젤로와 공자, 그리고 미지의 인물 하나가 등장하도록 구성했다. 책의 전면에는 영어로, 뒷면에는 한자로 글씨를 새겨 넣은 것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우리가 수상한 이유는 차별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 참가자들은 국제대회 경력이 화려한 프로페셔널 눈조각가들이라 테크닉 면에서 최고수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수미술의 깊이와 감동을 고스란히 눈조각으로 옮겨보자고 방향을 잡았지요. 전체적으로는 비구상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서면 깜짝 놀랄 정도의 디테일을 완성한 것이지요.”

경연대회는 4일 동안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하루 이틀 지나며 ‘우리 작품이 주목받고 있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조형미와 주제의식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낼 즈음, 한 사람이 다가와 엄지를 치켜들며 “유어 베스트, 넘버 원!”이라고 말하기에 “땡큐”라고 대답을 해 줬는데, 시상식장에서 보니 심사위원의 한 명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잘 기획된 작품의 감동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어요.”
 

<사진제공=한선현 작가>


한선현 작가는 눈조각의 매력을 ‘덩어리감’과 ‘사라짐’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시간에 커다란 덩어리의 조형작품을 시도하기에 더 없이 좋지요. 하늘에서 선물해주는 멋진 재료로 사람이 뭔가를 만든다는 점도 멋지구요. 기온이 올라가면 녹아 사라지지만, 이것 역시 단점이자 매력이 아닐까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국제조각대회 우승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안고 돌아온 그는 다시 벌말의 이웃들과 만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쇠락해가는 변두리마을 벌말의 풍경과 이웃들의 모습에서 예술적 소재와 영감을 얻는 작가는 화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결성된 화전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에서도 아이디어맨으로 통하며 이웃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한선현 작가는 다음달 9일부터 28일까지 자신의 창작공간이자 예술 사랑방인 치아오에서 ‘안녕! 화전상회 신장개업展’ 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다. 전시에는 한선현 작가가 화전 벌말의 이웃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창작한 조형작품과 회화, 사진 등이 전시된다. 더불어 치아오에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이석연 작가의 ‘오토마타(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조형미술)’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제 창작공간과 전시공간을 모두 공개하는 흥미로운 전시를 열 계획입니다. 9일 오프닝 행사에는 수십년 전 ‘화전상회’ 건물을 직접 지으신 90대의 옛 주인 어르신도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서민들의 역사를 품은 소박한 공간이 어떻게 변신했는지 궁금하시면 한 번씩 구경 오세요.” 전시문의 010-3704-3462.

 

한선현 작가를 찾아온 이웃들. 왼쪽은 벌말에서 '한국공작소'를 운영하고 있는 절친 이웃 청해스님, 가운데는 '화전상회' 건물의 옛 주인인 이인지씨. 화전상회 건물은 이인지씨의 부친이 60년 전 직접 지었다..     

 

다음달 9일부터 열리는 '안녕! 화전상회 신장개업展'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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