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권우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지난 1월 28일 국회 도서관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내세운 주제는 ‘공공도서관 정책의 진단과 개선방안’이었는데, 부제가 주제의식을 훨씬 잘 드러낸 바 ‘개인학습공간을 넘어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으로’였다. 평소 도서관 문제에 관심 있는 이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챘을 테다. 도서관에 설치된 일반열람실, 흔히 독서실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없애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놀라우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은, 전국에서 모인 사서들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으면서도 공론화하지 못하다 기회가 오자 자신들의 바람을 드러내는구나 싶었다.

나는 이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내 발언보다는 도서관 전문가의 발표와 토론에 빛나는 대목이 많았다. 먼저 명지대 권나현 교수는 공공도서관에 독서실 기능이 부여되고 이 경향이 강화되어온 근원을 일제의 도서관 정책에서 찾았다. 서구에서는 민주적인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세우고 발전시켜왔으나, 일제는 식민체제에 순응하는 신민을 양성하는 학교 교육의 보조기능으로 도서관을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이 점은 해방 후 심각한 문제점으로 인식되어 1947년에 나온 ‘조선연감’에 “과거 일제가 도서관 경영을 학생에 두고 유지 발전시킨 실적에 비추어볼 때 도서관에 대한 일반적 견해가…(중략) 해방 후 존속되고, 성인교육의 도장인 도서관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게” 했다는 지적이 실려 있을 정도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권 교수는 도서관이 본디 “모든 계층의 상호이해와 친밀감을 높이고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을 막아주며, 지성적 선거권자로 정치에 참여하고, 더 능률적으로 일하게 돕고, 자기향상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회 교육 및 계몽기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일제는 깨어 있는 시민의 출현을 원하지 않았다. 가르치는대로 이해하고 외우기를 바랐다. 그 대가로 상급학교 진학이나 일자리를 보장했다. 독서실의 기원을 알고 나면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한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된다.

이용훈 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은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일반 열람실 제공 서비스가 공공성에 부합하는가? 즉 사적재(私的財)가 아님에도 배제와 경합이 불가피하고 공공성 구성요소(공익성‧공민성‧공개성‧공정성) 중 공개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질문이 추상적이라 이해하기 어렵다면, 오지은 광진정보도서관 관장의 생생한 ‘증언’을 참고하면 된다. 광진정보도서관을 보면, 독서실 운영에 드는 비용이 전체 도서관 예산의 14.5%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독서실 한 좌석의 월별 소요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8만3700원이 된다. 한마디로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그 사람의 입시나 취직을 위해 다른 시민의 이용을 제한하며 매달 8만4000원의 가치를 독점하도록 방치해도 되는가?

이론으로 보면 독서실 기능을 폐지하고, 도서관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본디 일반 열람실 없이 개관한 도서관에 민원을 제기해 설치하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공공재를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이용자와 지역 정치인이 야합한 결과라 할 수 있을 터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며 청년층의 열람실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원론만으로 시민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토론에서 나는 도서관의 역할을 명확히 창의와 협동의 공간인 메이크 스페이스로 재편하자고 제안했다. 도서관을 단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행위가 벌이지는 곳으로 바꾸자는 말이다. 이는 전문가에게 집필실을 제공하라는 수준의 제언이 아니다.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하고, 장르도 다양화하여 더 많은 창작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양시에 이른바 독서실이 없는 도서관은 아람누리와 풍동도서관 두 곳뿐이다. 이제, 지혜를 모아 도서관을 민주적 시민이 탄생하고, 새로운 상상력이 실현되는 창조의 공간으로 전환시켜보자.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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