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문고 · 알뜨레노띠 공동주최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2) - 허경 철학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생각이 ‘규정 폭력’
내 판단으로 타인 재단할 수 없어
오늘날의 윤리는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것

 

[고양신문] 고양을 대표하는 지역서점 한양문고와 이탈리아 명품 매트리스브랜드 알뜨레노띠가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 두 번째 시간에는 2016년 한국사회의 담론 변화를 예측한 책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발표한 허경 작가를 이야기 주인공으로 초청했다. 지난 1월 정끝별 시인이 ‘시의 세계’로 다가가는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허경 작가는 자신의 전공인 현대철학의 풍부한 사유를 선보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성찰을 들려줬다.

허경 철학자가 제시한 강의 제목은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였다. 강의장소인 한양문고 한강홀을 가득 채운 청중들은 단순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보기 위해 철학자의 이야기에 시종 귀를 기울였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흐 대학교에서 미셀 푸코를 전공한 허경 작가는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강의를 하며 다수의 책을 저술·번역했다.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현재 한양문고에서 ‘문학으로 철학읽기’, ‘월드뮤직-나와 우리를 다시 보다’ 등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나와 타인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성찰을 들려 준 허경 철학자.

 
진리에 대한 믿음이 민주주의의 적

허경 작가는 “인간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시작했다. 몇몇은 ‘이해할 수 있다’에 손을 들었고, 다른 몇몇은 ‘이해할 수 없다’에 손을 들었다. 허 작가는 몇 가지 예를 들며 ‘타인을 이해하기’의 지난함을 보여줬다.

“한국사회가 인종차별 사회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정하면 될까요?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정하는 게 맞겠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좋은 아빠인지 아닌지는 내가 아니라 내 딸이 정하는 게 맞을 거구요.”
내가 판단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어 허 작가는 인간의 집요한 자기중심주의를 지적하며 “이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간 존재의 조건 자체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관심법’을 쓴다는 궁예처럼 ‘내가 너를 안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한 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내가 진리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이들은 내 판단을 근거로 타인은 재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됐든 공산주의가 됐든 ‘진리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자신과 견해가 다른 이들은 필연적으로 ‘틀렸다’고 판단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경 작가는 역설적으로 “진리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말한다.
 

철학은 ‘그건 누가 정했어?’를 묻는 것

허경 작가는 몇 가지 용어에 대한 명쾌한 견해를 들려준다. 우선 ‘철학’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허경 작가는 “그건 누가 정했어?”라고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행동의 기준을 정한 사람이 누구이며, 그 기준으로 인해 권위를 누리는 이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성경의 한 구절을 흥미롭게 인용했다.
“예수는 성경에서 네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주고, 네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윤리학자들은 이를 반박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거나 싫다 해도, 상대 역시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제 멋대로 정하는 것이 바로 폭력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누군가가 이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판단이 커다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는 이것을 ‘규정 폭력’이라고 정의했다.
 


기쁨을 나누는 것이 우정의 충분조건

강의 후반부에 그는 타인을 향한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향한 수용과 환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슬픔을 나누는 친구보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말한다. 친구의 슬픔을 공감해주는 것은 의도적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상대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은 결코 의식적으로 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란다. “슬픔을 나누는 것이 우정의 필요조건이라면, 기쁨을 나누는 것은 우정의 충분조건입니다.”

허 작가는 내가 남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할 때 비로소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윤리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나그네를 맞이하는 사막 원주민에 빗대었다.
“내가 오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문 밖의 나그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두드림에 기꺼이 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우리가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다음 달 진짜인문학은 ‘박영규 작가’

지역의 다양한 문화 생태계가 어우러져 감동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의 다음 달 초대손님은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 작가다. 문학과 철학에 이어 역사 분야의 명품 강사를 모시는 셈이다.
박 작가는 ‘정조대왕은 과연 성군일까?’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강의는 3월 4일 저녁 7시에 열린다. 수강료 1만원이다. 신청문의 031-919-6144
 

한양문고와 알뜨레노띠가 함께 마련한 '한달에 한 번 진짜 인문학'은 올해 12월까지 매 월 첫째 주 월요일 저녁 한양문고 한강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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