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등단의 길이 된 동국대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의

원당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최근 고양작가회의 회장 취임
신춘문예 등단 20여 명 배출

 

시집 준비와 시창작 강의를 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박남희 시인


[고양신문] 신인 작가들에게 신춘문예는 어떤 의미일까? 여러 신문사에서 매년 개최하는 신춘문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으로 경쟁률이 치열하다. 시, 소설, 희곡 등 분야별로 당선자는 오직 한명 뿐이기 때문에 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박남희 시인에게 시 수업을 들은 이들 중 무려 20명 가까운 시인이 신춘문예와 문학잡지 신인상에 당선됐다. 박 시인만의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걸까? 박 시인 자신도 1996년에는 경인일보에, 1997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 『고장 난 아침』을 발표했고,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다.

박 시인은 원당에서 태어난 고양시 토박이다. 어머니 고향도 원당이다. 고양시와 관련해 호수공원이나 행주산성을 노래한 시도 있다. 특히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신평리에서’는 1990년 고양시의 물난리를 소재로 삼아 쓸쓸한 마음의 풍경을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2일 고양시작가회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박 시인은 계간지 『시산맥』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부터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산캠퍼스에서 ‘행복한 시창작과정’ 강의를 하고 있다.

이 강의 수강생 중 최근 3년간 권성은, 조성국, 한경선, 임은주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임 시인은 2014년에 이미 등단했는데, 박 시인 수업을 듣고 신춘문예에 당선된 케이스다. 이처럼 다른 곳에서 공부하다 온 사람들이 많고, 멀리 통영이나 거제도에서도 수업을 들으러 올 정도다. 특별한 당선 비법이 있을 것만 같아 그의 강의를 꼭 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원당에서 박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으며 자연과 더불어 실컷 놀았다. 이런 환경이 시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일산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시에 두 차례 낙방을 하고 검정고시를 거쳤다. 고교 입시에 실패하면서 그 충격과 답답함을 일기로 쓰기 시작했다. 매일 일기를 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도 매일 한편씩 썼다. 군 입대 후 군대 백일장에서 시와 산문이 각각 1등으로 당선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제대 후 국문과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는 교내 문학상을, 4학년 때는 전국 대학생 대상의 ‘범대학문학상’에서 1등을 수상했다.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시는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나 문학상을 받은 작품, ‘올해의 좋은 시’로 꼽히는 시 등 좋은 시를 많이 읽으면서 시적 감각을 익히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좋은 작품들을 올리고, 강의할 때 그 시들을 뽑아 활용한다.

대표작은?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는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시 ‘폐차장 근처에서’ 일부)


독자들은 1997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폐차장 근처에서’를 대표작이라고 한다. 나 자신은 2017년 『시산맥』에 발표한 ‘깡통 익투스’를 꼽고 싶다.

통조림을 열다가 물고기의 새로운 음모를 발견한다. 머리를 버리고 꼬리도 버리고 몸통 하나로 헤엄치는 법, 그것도 헤엄쳐서 사람들의 몸을 온통 바다로 만드는 법// 그렇게 그렇게/ 머리와 꼬리는 생각나지 않게 하는 법…(시 ‘깡통 익투스’ 일부)

여기서 익투스(ΙΧΘΥΣ)는 그리스어로 ‘물고기’라는 뜻이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비밀스럽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두 개의 곡선을 겹쳐 만든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동국대 강의를 소개해 달라.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산캠퍼스에서 진행한다. 기성 시인들의 좋은 시와 나의 신작시를 선보이며 강의를 하고, 수강생들이 써온 시를 합평한다. 올해는 3월 8일 첫 수업을 시작해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된다. 강좌명이 ‘행복한 시창작과정’이다. 시를 쓸 때는 고통도 따르겠지만, 써 놓으면 행복을 준다. 문학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를 무겁게 생각해서 부담을 갖지 말고, 행복하게 써보자는 의미다.

이후 계획은?

작년에는 군부대에서 독서코칭을 진행해 우수강사로 선정됐고, 연천 백학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동시도 가르쳤다.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도 ‘독도사랑글짓기대회’에 참가해 장관상과 경기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서울시립대 평생교육원 시 창작 강의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시집도 올해는 출간할 계획이고, 이후 평론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고양작가회의 회장으로 초청 문인의 폭을 넓혀 원로 및 중견 문인의 강연을 진행하려고 한다.

 


신평리에서         - 박남희

강처럼 다시 흐를 수 없는 발길을 이끌고 강으로 갔습니다. 안개 낀 날만 무성하던 풀밭 사이로 혼자 흐를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강물이 흐릅니다. 발아래 풀 섶 간지르던 바람도 햇살도 끝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 속으로 밀어 넣으며 강은 또 무엇을 태우려 드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마을, 아침저녁 안개만 저희들끼리 히히덕거립니다. 이따금씩 시커먼 기적소리를 매달고 흑백사진처럼 기차가 사라진 뒤, 희뿌연 연기 뒤늦게 하늘로 오릅니다.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강둑 너머 그리운 꽃망울 터뜨리던 맨드라미 환한 눈시울도, 길섶 논배미 울리던 황소울음도 꿈속의 봇물 보듯 새삼 그리워집니다. 긴 방죽을 따라 이삿짐 나르던 경운기 바퀴 깊게 패인 자국마다 빗물이 고여, 여기저기 상처처럼 돋아난 질경이 풀 무성합니다. 애초부터 객지로 떠돌던 바람이 어디 있을까요. 모처럼 잊혀졌던 사람들을 싣고 나룻배 하나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잠시 오래된 풍문에 귀 기울입니다. 강은 흐를 수 없는 것들의 억장 밑으로도 여전히 흐르고, 멀리 가물거리는 세월 위에 내 마음 같은 물수제비 하나 띄웁니다 물밑에도 가을이 깊습니다.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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