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명퇴하고 새 직업 택한 <김동식 하얀마음중산요양원 원장>

증권사에서 48세에 명퇴한 김동식(52세)씨와 그의 아내 박지영(50세)씨. 부부는 현재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에서 작은 요양원(하얀마음중산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48세에 20년 넘게 다닌 증권사 명퇴
사회복지사 자격증으로 시설경험 쌓아
동네활동하며 인맥 넓히고 시장조사도
행복한 출근길, 노후 생활걱정도 덜어


[고양신문] “직장생활에서 즐거움을 찾기 힘들었어요. 증권회사 같은 금융권은 실적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월요일 회의에 있을 실적체크 부담으로 주말이 괴로울 지경이었죠. 그렇게 더 버틸 바에야 그냥 지금 나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에서 ‘하얀마음중산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식(52세) 원장. 그는 4년 전 20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나왔다. 연봉은 좋았지만 스트레스가 심했던 직장생활. 정년이 보통 50대 초중반인 증권사이다 보니 조금 일찍 명퇴한 것에 불과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집에 와 슬그머니 식탁 위에 회사 명퇴프로그램을 올려놨더니, 당시 고2였던 아들은 “이제 우리집 망하는 거야?”라는 서운한 말을 했다. 아빠 마음도 몰라주던 철없는 아들과 달리 아내는 “힘들면 그만둬”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그가 요양원 사업에 도전하기로 한 이유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격증도 그렇게 크게 고민하고 따낸 건 아니었다. 금융권에서는 명퇴를 대비해 자격증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인데 보통은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사회복시자 등이 인기가 많다. 자격증으로 진짜 뭔가를 해본다기보다는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도 그렇게 자격증을 5년 전에 미리 준비했던 것. 자격증 하나 가지고 있으면 든든하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명퇴를 결정하고 나니 이것밖에 믿을 게 없었다. 그는 명퇴 후 1년간은 사회복지시설(요양원) 직원으로 근무했다. 자신이 운영할 수 있는 소규모 요양원에서 그렇게 1년간 원장을 유심히 지켜보며 운영 노하우를 익혔다.

인생에서 두 번째 직장이 그에겐 잘 맞았을까. 다행히 적성에 맞았다.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닌 온전히 마음과 몸을 쓰는 일이 그는 즐거웠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도 이 일에 함께 뛰어들었다. 남편이 요양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는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물론 그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단기간이었지만 명퇴 신청 직후 6개월간의 유급 휴가기간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보려 노력했다. 미용학원, 목공학원을 다니며 일을 배웠고, 컴퓨터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여러 학원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요양원을 차릴 동네를 알아가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공부였다. 일산에선 잠만 자고 서울에서 일하다보니 동네사람 한 명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노인복지관 봉사활동, 주민자치위원 활동, 아파트 동대표 되기 등이었다. 주민들을 만나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그렇게 상권도 알아가고, 잠재적 고객도 늘려갔다.

어르신들과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고 있는 김동식(사진 맨 왼쪽) 원장.

동네생활도 열심히, 직장(요양원)생활도 열심히, 그렇게 1년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다보니 기회가 찾아왔다. 일하던 요양원의 원장 소개로 중산동 지금의 요양원을 인수하게 된 것. 인수 당시에는 9명 정원에 어르신 2명만 있었지만 지금은 9명 모두 입실해 나름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김동식 원장이 명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두려워 말라”이다. ‘직장이 전쟁터라면 바깥세상은 지옥’이란 말이 있지만 그가 겪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는 4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출근길이 즐겁고, 언제나 마음이 홀가분하다. 주말도 없이 24시간 비상대기를 해야 하는 요양원 일이지만 그는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단언했다. 언젠가는 준비했어야할 노후대책이라는 숙제를 말끔히 끝냈다는 것도 그에겐 행복한 일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면 많이 싸울 줄 알았는데, 서로를 의지하다보니 싸울 일도 없단다.

이런 그의 소식을 듣고 증권사 동료와 후배들이 명퇴 이후의 삶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자주 찾아왔다. 그는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솔직히 털어놓는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고 일이 적성에 맞았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는 치밀한 계획보다는 약간의 모험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적어도 제 경험상으로는 제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사무능력이 이 일에 도움이 됐어요. 물론 제가 가장 젊은 원장에 속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저보다 경험 많은 원장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밖으로 나와도 길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으세요.”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