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다.

작년 11월 대장동에 600평 농장을 얻을 때만 해도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에 부풀어 내심 근사한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나 텃밭 임대료를 완납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계약을 할 때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이런저런 시설을 지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었는데 고만 땅주인의 마음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텃밭에 시설을 지으면 민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정을 해보았지만 땅주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린 처지라니, 온몸의 기운이 풀리면서 무상감이 밀려왔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신바람을 내가며 농장을 설계했던 일들이 다 부질없고, 내 땅 없는 서러움이 울컥 북받쳤다.

그래도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라 계약이 취소된 다음 날부터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농장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농장은 쉬 구해지지 않았다. 김포나 파주에 농장이 나오긴 했지만 그곳까지 가서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 멀었다. 혼자라면 어찌어찌 고민을 해보겠지만 여러 해 함께 농사를 지어온 농장 가족들을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농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었고 봄이 되었다. 그러나 농장은 끝내 구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고 차를 몰고 고양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아파트 단지만 벗어나면 널린 게 논밭인데 농사지을 땅 몇 백 평을 못 구해서 쩔쩔맨다는 게 참 기묘하게 여겨졌다.

일산에 이사 와서 농사짓기 시작한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땅을 얻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진 탓인지 이제는 농사지을 땅을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농장 얻는 걸 포기하고 선배가 운영하는 농장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덕분에 지난 4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던 농장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거처를 잃었다는 상실감도 상실감이지만 정든 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 훨씬 크다.

그래서 농장을 구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미안하다. 하지만 설사 농장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내 소유의 땅이 아닌 이상 우리는 어차피 몇 년 못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건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이들의 숙명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농장을 만들면 된다. 그러면 누구나 마음 놓고 주말농사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농장을 만드는 일은 좋은 학교를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 안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양시가 시민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시민농장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시의 의지가 확고해 보이는 만큼 올해 안에는 만들어질 것 같다.

어떤 형태로 시민농장이 만들어지고 운영될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가급적이면 각 구 별로 시민농장이 하나씩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매개로 서로를 보살피는 이웃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는가.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