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더 큰 성공을 위한 전초전일까?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아무런 합의도 없이 결렬됨으로써 한반도에서 ‘53년 정전협정체제’의 종식을 염원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회담 이후 쏟아진 북미 양쪽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영변 핵시설+알파와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둘러싼 양측의 계산 불일치로 합의문 도출이 무산되었다. 김혁철–스티브 비건 실무라인 협상에서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 종전선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등 주요 합의를 이루고 대북 경제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양 정상이 논의해 결정하도록 빈 칸으로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튿날 확대정상회담에서 존 볼턴 등이 의제 외의 핵탄두,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폐기까지 요구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이번 회담은 결렬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회담 결렬이 성공의 자양분이 된 레이카비크 미소정상회담

주요 회담이 결렬되면 책임공방이 거세게 일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등 후유증을 크게 남기는 데 반해, 이번 회담은 양측에서 책임 공방이 일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과 가까워졌으며, 추가 제재를 할 의향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야 하기에 추가제재는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몇 주내로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언론을 통해 밝혔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합의결렬 직후 두 정상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 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하여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하였다.

회담 결렬이 향후 더 나은 합의 도출에 자양분이 되었던 회담이 있다.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카비크에서 이틀간 열렸던 미소정상회담이 바로 그것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제안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호응해 성사된 레이카비크 회담에서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각료와 전문가들을 대동한 채 토론을 벌여 군비통제에 대해 광범한 합의를 이루었지만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tiative)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 레이건은 우주 공간에서 엑스레이와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이 구상이 핵무기 경쟁을 끝낼 거라고 주장하면서 SDI 개발을 고수했고, 고르바초프는 SDI가 오히려 우주에서 핵무기 경쟁을 격화시킬 것이라며 이는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용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합의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회담 결렬 이후 양국의 관계는 악화되고 긴장은 높아졌지만 1년 후 워싱턴에서 다시 만난 양 정상은 역사적인 ‘중거리핵미사일협정’을 타결했으며, 4년 후에는 ‘전략무기 감축협정’ 체결로 이어졌다. 1987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소정상회담의 성공에는 고르바초프의 SDI 양보가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회담 전에 자신이 신뢰하는 사하로프 박사로부터 우주공간에 엑스레이 레이저를 설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기술적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SDI의 기술적 결함을 설명 받아 이해하고 있었기에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워싱턴 미소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년 전 레이카비크 회담에서 미소 양국이 서로 어디까지 합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국은 레이카비크 교외에 위치한 외딴집 호프디하우스에서 양 정상, 각료, 전문가들이 각급 차원에서 깊은 토론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괄적인 로드맵을 먼저 밝혀야 한다

회담 결렬 이후 미국 내 여론은 조야를 막론하고 배드딜(bad deal)보다 노딜(no deal)이 낫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애써 회담 결렬을 선택한 것도 이같은 자국 내 여론을 의식해서였음이 회담 후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협상 중에 민주당이 무리하게 마이클 코언 청문회를 강행한 것 때문에 협상이 실패했다고 비난했는데, 이는 자신이 국내정치를 의식했다는 점을 역설한다. 따라서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 내 여론은 중요한 상수가 되어버렸다. 북한이 제시하는 비핵화 조치가 미국 언론과 민주당을 만족시키는 수준이 되어야만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제 자신이 애초 생각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카드를 내놓아야 하며, 최소 영변 외 지역에 존재하는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미 정보당국의 의혹 해결을 위해 사찰 허용이 불가피하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비핵화 이슈가 간명해졌으며 북미 양측의 입장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완전히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대신 2016년 이후 단행된 제재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을 해제해달라는 것이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뿐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도 신고하고 폐기해야만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제재에 대한 양측의 생각이 크게 다른데,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가 부분적 완화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미국은 전면적 해제라고 여기고 있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미국은 조금이라도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 구멍이 뚫린 둑처럼 제재의 전체 틀이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북미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타결방식이 불가피하다. 행동은 단계적으로 하더라도 포괄적인 비핵화 로드맵은 먼저 밝혀야 한다. 미국도 김정은 위원장이 포괄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담대하게 내놓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북미 양측을 중재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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